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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채털리 부인의 은밀한 욕망
김민경 2007-07-12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 vs 영화 <레이디 채털리>

“예술인가, 외설인가.” 이 낡은 논쟁의 원조 중 원조,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y’s Lover, 1928)이 다시금 스크린을 찾아왔다. 1960년에야 비로소 해금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그동안 수편의 에로틱한 영화로 변주됐고, 교양의 이름으로 청소년 필독도서 전집에도 슬쩍 포함돼 학생들에게 은밀한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D. H. 로렌스가 성관념의 혁명만큼이나 이 소설에 담고 싶었던 것은 바로 계급비판와 산업혁명에 대한 반성적 접근. 그동안의 채털리 부인에 관한 영화가 원작의 비판의식을 걸러내고 에로틱한 장면에 집중했다면, 여성감독이 연출한 <레이디 채털리>(2006)는 원작에 대한 또 다른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채털리 부인

원작 원작에서 채털리 부인은 왕립미술원 회원인 아버지와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던 어머니 덕분에 일찍이 고등교육과 반골정신을 접한 ‘신여성’으로 설정돼 있다. 결혼 뒤엔 전쟁으로 하반신 불구가 된 귀족 남편의 주장대로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월함을 곧이곧대로 믿지만, 결국 남편의 하인인 사냥터지기 맬러즈와의 섹스에 눈뜨면서 지성만 강조하는 점잖은 성도덕을 격렬히 비판하게 된다.

영화 그녀의 지성적 배경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하지 않고 예전 애인들의 존재도 없다. 비판정신을 지니고 성 경험도 좀더 많은 원작의 채털리 부인에 비해 그녀는 좀더 침착하고 조용하다. ‘엠마누엘 부인’ 실비아 크리스텔이 주연한 1981년작 <차타레 부인의 사랑>이 그녀를 관능의 화신으로 묘사한 반면, <레이디 채털리>의 마리아 핸즈는 소녀적인 해사함을 간직한 내성적인 여성의 감성으로 성에 접근한다.

채털리 부인의 남자

원작 원작에서 그녀의 연인은 네 사람. 10대 시절부터 일찍이 혼전순결 개념을 부정하고 애인을 만들었고, 영화와 달리 바람 상대도 한명이 아니다. 그녀의 첫 번째 불륜 상대는 남편의 친구인 희곡 작가 마이클리스. 그러나 성공에만 목마른 창백한 정신의 소유자 마이클리스는 그녀에게 쾌감을 주지 못한다. 그녀가 진정 성적인 교감을 느낀 건 남편의 하인인 천한 사냥터지기 맬러즈다.

영화 남편의 심부름으로 찾아간 오두막에서 목욕 중인 사냥터지기를 목격한다는 설정은 원작과 동일하지만, “하얗고 여윈 몸”,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의 외로운 암술 같은 몸!”의 소유자로 묘사됐던 원작의 맬러즈는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아랫배도 나오고 목살도 살짝 늘어진 듬직한 체구의 파킨이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다.

채털리 부인의 말

원작 원작은 ‘썰’로 가득하다. 클리포드와 그의 친구들은 시종 랙비 저택의 살롱에서 볼셰비키주의부터 부르주아적 성도덕에 이르기까지 관념적인 대화만 나눈다. 채털리 부인과 남편도 지역 광부들의 파업, 가난, 불평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싸움에 이르곤 한다. 길고 긴 논쟁 장면은 귀족사회의 성적 위선와 천박한 계급인식을 고발하려는 D. H. 로렌스의 주제의식을 대변하는 중요한 대목들이다.

영화 원작과 달리 <레이디 채털리>는 조용한 영화다. 도입부에서 살롱에 모인 신사들의 관념적인 대화를 건조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나올 뿐, 영화는 원작에 묘사된 채털리 부인의 비판의식을 대사나 내레이션에서 상당부분 덜어냈다. 원작이 귀족들의 말 잔치에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똑같이 ‘썰’을 쏟아내는 오류를 범하는 반면, 영화는 가냘픈 새소리나 이슬에 촉촉이 젖은 숲 등의 감각적 묘사에 집중해 온기없는 귀족 저택과 차가운 산업사회를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채털리 부인의 성

원작 여성의 각성을 통해 성혁명을 말하고 있지만, 여성의 쾌감의 메커니즘에 대한 원작의 시각은 섬세하지 못하다. 그녀의 첫 번째 애인은 채털리 부인이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 쾌감을 찾으려 하면 “당신은 자기가 주도권을 쥐어야 직성이 풀리나보군!” 하고 혐오를 드러낸다. 맬러즈도 마찬가지로 “그건 여자들 속에 있는 저급한 종류의 자기의지요”, “그런 여자들은 레즈비언적이야”라며 여성의 쾌락이 남성에 의존함을 전제한다.

영화 여성의 적극적인 성행위에 원작만큼 적대적이지 않다. <레이디 채털리>에선 채털리 부인이 여성상위체위를 시도하고, 파킨의 몸을 만지고, 페니스를 자세히 관찰하며 적극적으로 즐길 때 비로소 진정한 쾌감을 얻는다고 묘사된다. 여성의 체험에 초점을 맞춘 <레이디 채털리>는 원작에 없는 실비아 크리스텔의 마스터베이션 장면을 연출한 1981년작과도 확연한 시각차를 보여준다. 페랑 감독은 관음적 시선을 걷어내고도 영화가 에로틱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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