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2차대전 말 일본군이 점령중인 중국의 작고 외딴 마을. 과부 유아(장홍보)와 사랑을 나누고 있던 늙은 총각 마다산(장원)의 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일본군 포로 두명을 맡기며, 자신이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 잘 감시하고 있으라며 떠난다. 포로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을 묻겠다는 위협과 함께. 일본군의 눈 피하랴 죽여달라는 포로 달래랴, 상처 치료하고 비싼 밥 먹여주랴, 마다산과 마을사람들은 탈진할 지경이다. 6개월이 지나도 괴인이 다시 오지 않자 포로를 죽이려 하지만 그나마 실패한다. 마침내 포로는 마을사람들과 합의를 맺는다. 일본군에 인도하면 자신들이 마을에 식량 두 수레를 보상하겠다는 것. 그러나 이때부터 사건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Review 어느 학자의 말대로 역사가 시체의 산을 넘어 달려가는 마차라 해도, <귀신이 온다>의 무대인 중국의 외딴 강촌 사람들은 피의 수레바퀴를 피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정체불명의 괴인이 일본군 포로 두명을 맡기기 전까지는. 어질기 짝이 없는 주민들에겐 점령중인 일본군은 그저 약간 불편한 외지인일 따름이며 그나마 조금씩 비위만 맞춰주면 아무 탈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일본군 지휘관의 얼굴은 심지어 해맑다. 2차대전 말기지만 이곳에선 모든 이가 착했다. 그런데 그때, 귀신이 왔다. 얼굴도 신분도 알 수 없는 정말 귀신 같은 괴인의 요구는 순진한 마을사람들에겐 너무 황당무계하고 까다로운 것이었다. 바로 곁에 일본군이 진을 치고 있는데, 일본군 포로를 다치지 않게 감금해두라는 것. 왜 이런 요구를 하고 그렇게 요구하는 괴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충분히 궁금할 만하지만 답은 없다. 그리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귀신이 온다>는 역사적 주석이 아귀를 맞출 수 있는 시대극이 아니다. 오히려 말 그대로 귀신의 시험에 든 착한 사람들의 심리극이며 소동극이다. 적어도 첫인상은 그렇다.
<귀신이 온다>는 시대극과 심리극을 기묘한 방식으로 얽어놓는다. 이야기의 표면은 촘촘하게 짜맞춰져 있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극히 혼란스럽다. 초장부터 난데없는 숙제를 받아든 순박한 마을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좌충우돌하면서 보는 사람에게 속편한 웃음거리를 제공한다. 이 와중에 이들의 남루한 육신을 보이지 않는 전쟁의 거미줄이 조금씩 휘감는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극중인물은 물론 관객도 좀처럼 눈치채기 힘들다. 그 거미줄이 숨구멍을 막아버리기 직전까지도.
90분가량 지나 일본군과 마을주민이 어우러진 파티가 벌어지고 이야기가 마무리돼간다고 느낄 무렵, 사태는 심상찮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역사의 미친 수레바퀴가 방향을 틀더니 갑자기 착한 마을을 향해 돌진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끝이 아니다. 종전 이후에 벌어지는 또 한번의 사건, 그리고 뒤이은 결말은 모든 예상을 뒤엎는다. <귀신이 온다>의 마지막 30분의 의외성이 전하는 충격은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뛰어난 데뷔작 <햇빛 쏟아지던 날들>의 감독이자 인기 배우인 장원은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두 번째 작품인 <귀신이 온다>에서도 전작에서처럼 역사적 배경을 끌어들이되 역사적 서사에선 슬쩍 비켜선다. 쉬지 않고 흔들리는 카메라와 가파른 편집은 악마의 시험대에 오른 작은 공동체의 힘과 균열, 전쟁이 중개한 두 문화의 소통과 충돌,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인간의 마성과 생명력의 파노라마를 다큐멘터리적인 성실함으로 펼쳐보인다. 그러나 <귀신이 온다>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귀신이 온다>의 이야기는 역사와 우화가 어긋나게 이어붙여져 있다. 있을 법하지 않은 우화에서 시작해 역사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마지막엔 우화적 판타지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결말의 충격은 이 어긋남의 효과다. 어긋남을 다듬지 않고 내버려둠으로써 <귀신이 온다>는 많은 의문을 다시 남긴다. 초반에 등장한 얼굴없는 괴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즉결 처형을 명하는 중국 장교는 어디서 나타난 걸까. 사악한 일본군 지휘관은 왜 어떤 심리적 갈등도 드러내지 않고 충직한 포로가 돼버리는 걸까.
<귀신이 온다>는 그러나 그런 질문들을 사소화하는 귀기(鬼기)의 영화다. 장원이 주연을 맡은 <붉은 수수밭>을 연상케 하는 <귀신이 온다>의 마지막 장면은 끔찍한 형상에도 불구하고 숭고한 종교적 제의처럼 느껴진다. 장원 감독은 “중국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참화를 겪으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중국의 역사에는 그리고 아마도 모든 역사에는 해명될 수 없는 귀신이 왔다. 종종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 역사는 발광했다. <귀신이 온다>는 그 귀신 같은 역사의 칼부림에 사라진 민중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다.
허문영 moon8@hani.co.kr▶ [개봉작] 귀신이 온다
▶ <귀신이 온다> 정치적 수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