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기를 쓰고 집 평수 늘리고 애들 공부시키는 것은, 따지고 보면 불안한 미래 때문이다. 자식들이 승승장구해 ‘나라의 동량’이 되길 바라는 이들보다, 그저 ‘사회적 루저’만 안 됐으면 하는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내 한몸 누일 곳과 굶지 않을 길은 어지간하면 찾을 수 있다. 여차하면 각종 시설과 기관에 의탁할 수 있고, 하다못해 동네 노인정에서 청소해주면서 삐댈 수도 있다(내 주요 노후대책 중 하나다). 문제는 아플 때다. 병원에 못 가거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거나, 그래서 병든 채 온 가족 고생시키다 버림받는 상황이 ‘궁극의 공포’다. 소유한 집과 잘난 자식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일종의 ‘보장보험’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의료에 대한 ‘미래의 공포’는 당장 ‘현재의 공포’에 시달리는 이들 앞에서는 엄살이다. 7월1일부터 새 의료급여법이 시행됐다. 그동안 병원에 갈 때 돈을 내지 않아도 되던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들도 앞으로는 병원에 가면 돈을 내야 한다. 동네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려면 1500원, 큰 병원을 이용하려면 2500원. 중증질환 진단에 필요한 CT나 MRI를 찍으려면 매번 5%를 부담해야 하는데 사실상 찍지 말라는 얘기이다. 또 규정된 의료급여 일수를 초과하는 만성 질환자들은 이제 정해진 병원에만 가야 한다. 다른 병원에 가면 진료비 전액을 본인이 내야 한다. 돈 벌어 세금 내는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건강보험 대상자다. 의료보험비도 못 낼 형편인 이들은 따로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구별돼 있다. 수급권자 중 더 극빈한 쪽이 1종이다. 65만명이 넘는다(2종 수급권자는 외래 진료비를 본인이 일부 부담해왔다). 대신 이들은 매달 6천원씩 ‘건강생활유지비’를 받는다. 한달에 두세번 병원에 갈 수 있는 금액이니, 사실상 감기에도 걸리지 말라는 ‘건강생활경고비’이다.
이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의료계가 반발했고 국가인권위도 의료차별이라고 지적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재정 압박을 이유로 밀어붙였다(보건복지부는 이미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이 공짜 파스를 남용하고, 일년 열두달 병원에 가서 사는 이들이 많다고 여론몰이를 한 일이 있다. 그리고는 장관이 ‘반성’했다). 시민단체와 의료소비자단체, 대한의사협회까지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이 똘똘 뭉친 것은 처음 본다. 거부 운동을 하고, 헌법 소원도 낸다고 한다.
누구든 집에 중병 앓는 환자가 있으면 ‘계층하락’이 불가피한 나라에서, 아플 권리도 아무나 갖는 게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