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악극으로도 잘 알려진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켈트인의 전설에서 비롯되어 비극적 사랑의 원형으로 끊임없이 회자되어온 이야기다. 리들리 스콧과 토니 스콧 형제가 기획과 제작을 맡은 영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비극에 이르는 연인이라는 고전적 뼈대를 차용하되, 그 위에 로마 멸망 뒤 영국과 아일랜드의 대립이라는 시대적 맥락을 입혔다. 아일랜드가 부족 단위로 흩어진 영국을 지배하던 시대, 영국의 통합을 도모하는 군주 마크(루퍼스 스웰)의 손에서 키워진 트리스탄(제임스 프랑코)은 전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장례절차에 따라 바다에 띄워 보내진다. 해안가에 떠내려온 트리스탄을 발견한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소피아 마일즈)가 그를 살려내고, 두 사람은 서로의 신분을 알지 못한 채 사랑에 빠진다. 정치적인 음모와 배신, 어긋난 사랑의 파국 등 익숙한 요소들로 조합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눈에 띄는 새로움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그러나 정치적인 긴장과 애끓는 연애담을 능숙하게 엮어가는 시나리오는 빈틈없이 탄탄하고, 갈등의 지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연출 감각 역시 빼어나다. 어설픈 야심없이 우직하게 밀고 나간 정공법이 영화를 고전에 걸맞은 단아한 품새로 완성해냈다. 시대극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세트와 의상, 간장을 녹여낼 듯 애틋한 제임스 프랭코의 눈빛 연기는 작품의 풍미를 더하는 향신료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