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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스틸 라이프>와 대운하

지난해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인터뷰에서 지아장커는 <스틸 라이프>에 관해 “사라져가는 기억과 싸우는 영화”라고 말했다. 중국 인민폐 10위안에 새겨질 정도로 아름다운 산수로 유명한 싼샤가 거대한 댐 건설로 파괴되는 현장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할 광경을 펼쳐 보인다. 철거 중인 텅 빈 건물 한가운데 뻥 뚫린 창문 밖에서 거대한 건물 하나가 폭발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데도 영화의 두 남녀는 동요하지 않는다. 지금껏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 어제까지 존재했던 모든 것이 사라져도 놀라지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16년 전 헤어졌던 아내를 찾아 나선 사내 한산밍이 싼샤에 도착하자마 경험한 일을 돌이켜보라. 마술을 보여줬으니 돈을 내라고 협박하는 자들에게 사내는 망설임없이 칼을 들이민다. 하루에도 2~3번씩 그런 협박을 받아본 적 있다는 투로 자연스런 한산밍의 동작은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일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일상임을 알려준다. 옛날 그 동네는 10년 전에 물에 잠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이의 충격을 염려하지 않고, 그 소식을 접한 한산밍도 놀라지 않는다. 지아장커는 그렇게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도 놀라지 않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을 찾아 보여준다. 영화의 소제목인 ‘담배, 술, 차, 사탕’이 그것이고, 노동하는 자들의 검게 탄 근육이 그것이다(그렇게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지아장커의 영화적 마술에 관해서는 이번호 전영객잔 허문영의 <스틸 라이프> 영화평을 꼭 보시길).

영화 속 인물들은 동요하지 않지만 감독 지아장커는 이런 사태를 바라보며 경악한다. 뭔가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포착한 그는 이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지 UFO와 로켓처럼 발사되는 건물로 표현한다. 판타지영화의 세트 안에서나 존재할 현실이 펼쳐지고 있으니 그런 비유는 절묘하다. <스틸 라이프>에서 한산밍은 탄광에서 일하다 싼샤를 찾은 걸로 나오지만 나는 그가 한국에서 불법 체류 노동자로 일하다 16년 만에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돌아와보니 오래전 살던 곳이 흔적도 없이 물에 잠겼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긴 중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16년 전 분당이나 일산 같은 신도시를 떠났던 누군가가 돌아와서 지금 모습을 본다면 그 낯섦에 어떻게 반응할까.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정도라면 다행일 텐데 만약 대운하 건설로 물에 잠겼다면? 유력한 대통령 후보 한분의 공약이 그러하니 <스틸 라이프>를 보면서 자연 한반도 대운하의 미래가 염려됐다. 국토 이곳저곳을 파헤치고 폭파하고 무너트리는 장면들. 넓디넓은 중국 땅 한 지역에 불과한 싼샤댐 정도는 비교도 안 될 대운하 건설은 과연 어떤 비현실적인 장관을 만들어낼는지.

오랫동안 산을 깎고 터널을 뚫고 길을 내는 일은 무조건적인 찬사의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 교과서를 생각해보면 ‘사회간접자본’이니 ‘물류비용 절감’이니 하는 말들은 절대 비판해선 안 되는 불가침의 성역처럼 보였다. 싼샤의 그림 같은 풍경을 파괴하며 댐을 짓는 중국 정부의 머리 속에도 ‘개발, 현대화, 경제적 가치, 비용 대비 효과’ 같은 단어들이 가득할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그런 주문을 되뇌이며 국토 개발과 건설에 온 힘을 쏟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스틸 라이프>의 풍경을 ‘비현실적’이라고 쓰기도 망설여진다. 당연히 그런 경제적 가치를 논하는 자리에서 지아장커처럼 ‘담배, 술, 차, 사탕’ 같은 이야기를 하거나 천성산의 도마뱀 어쩌고 하면 미친 놈 취급을 당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한반도 대운하의 경제성이 있느냐 없느냐로 국한된 작금의 토론은 어딘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경제성이 있다 해도 대운하 건설이 만들어낼 파괴와 이별이 나는 싫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대운하 건설 공약은 실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 즉 세계관의 문제가 아닐까. 2007년 한국이라면 그만 개발에 관한 환상에서 깨어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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