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 디자이너 안나(그라이 베이)는 남자친구 요한(마크 스티븐스)이 북극해로 떠난 뒤 연락이 끊기자 술과 무분별한 섹스에 빠져든다. 방황하던 중 다정다감한 남자 프랭크가 나타나고, 안나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요한이 갑작스레 등장하면서 그녀는 다시 한번 혼란에 빠져들고, 결국 두 남자 모두를 떠나보낸 채 파리로 향한다.
<올 어바웃 안나>는 “표현 방법이 적절하다면, 여성들도 에로영화나 포르노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전제하에 고안된 ‘퍼지 파워 선언’(The Puzzy Power Manifesto)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제작사 젠트로파에서 90년대 말 <콘스탄스> <핑크 프리즌> 등 여성관객을 타깃으로 한 에로물을 내놓으며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퍼지 파워 선언’은 영화가 논리적으로 연결된 플롯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여성의 욕망에 근거해야 하며, 폭력이나 강압에 의한 성적장면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도 한 <올 어바웃 안나>는 여성을 주체 삼아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는 기본적인 설정에서는 긍정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비교적 캐릭터 구축에 충실했던 초반부를 지나면, 영화는 섹스신을 전시하기 위해 이야기를 가공하는 전형적인 주객전도의 길로 빠져든다. 그럴싸하게 등장했던 안나는 중반 이후부터 여느 에로물의 여인들처럼 맥락없이 옷을 벗는 인형으로 전락할 따름이다. 파리까지 날아가서 느닷없이 여배우와 정사를 벌이고 있는 안나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여성들을 위한’이라는 수사가 그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