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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듬어진 감정과잉의 매혹

<이상한 계절> 못 | 소니BMG 발매

못(MOT)의 신작 <이상한 계절>에 대해 다른 곳에 쓴 글에서, 나는 못의 이 음반이 ‘얼마 전 (유행이) 지나간 음악의 꿈을 환기시킨다’고 썼다. 그리고 그 ‘음악의 꿈’이란 ‘세상을 거부하는 노래를 당신이(혹은 당신만이) 들어주길 바라는 간절함’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와서 다시 읽어보면, 이런 표현과 설명은 피상적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 개인적으로는 못의 음악에 대해 사용했던 말과 표현들이 ‘1990년대의 우울’을 사랑했던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기를 은근히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나 빼고는 모두 이상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정상 같지는 않다는 묘한 자의식으로 이루어진, 실존주의적 고슴도치라도 된 것처럼 타인과의 소통에 번번이 실패하던 자아가 클럽과 인터넷 동호회를 떠돌던 시절의 우울함 말이다. <이상한 계절>에는 그때 그 시절의 우울함과 함께하던 음악의 흔적들이 세심하게 변주된다.

사실 그 변주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음반’의 반열에 오른 데뷔작 <Non-Linear>(2004)에서 거의 완성된 스타일로 제시된 바 있다. <Non-Linear>에는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투명한 정서가 나풀거리는 멜로디, 1990년대 영미권의 세기말 대중음악(트립합, 인더스트리얼, 음악 스타일로서의 ‘라디오헤드’ 등)을 적극 활용한 사운드 방법론, 과시적이지 않은 재즈 사랑이 잘 통제된 채 혼합되어 있었으며, 한숨 쉬듯 노래하는 보컬은 도취와 자학 사이를 오가는 선연한 말솜씨를 구사하며 밴드의 음악적 풍경화에 인장(印章)을 찍었다.

햇수로 4년 만에 발매된 밴드의 두 번째 음반인 <이상한 계절>은 데뷔작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밴드는 자신들의 음악적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작과 마찬가지로 ‘엄격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음악적 통제력을 내비치면서도 감정적 진폭의 깊이 또한 희생하지 않는다. 째깍거리는 비트와 함께 파열과 봉합을 반복하며 진동하는 타이틀곡 <Close>를 비롯해 날아오르다 주저앉는 것 같은 멜로디가 인상적인 ‘완전한 세상’, 정교한 리듬 배치가 두드러지는 <Ghost> 등의 곡들이 특히 섬세하고 강렬하다. 때로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 과한 나머지 작위적으로 흐르는 순간이 있기는 하나(<다섯 개의 자루> <서울은 흐림>) 음반에 대한 전체적인 만족감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물론 <이상한 계절>이 모두의 귀에 편안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음반의 ‘잘 다듬은 감정과잉’을 견디기 어려워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뮤즈(Muse) 같은 밴드들도 마찬가지다. 뮤즈가 한국에서 누리는 인기를 고려해볼 때 못이 지금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이상한 계절>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보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우리가 딱히 정상적인 계절을 사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