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냉기가 흐르는 사이코패스 <검은집>

마음이 없다는 사이코패스, 공포에 앞서 괴력을 선사한다

보험사정원 전준오(황정민)는 새벽 2시30분 습관처럼 깨어난다.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려면 알코올이 필요하다.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못 견딜 것 같다”는 그의 악몽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이다. 소년 시절, 그는 동생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격했고, 그 원인에 일조했다. 출근 첫날, “자살해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나요?”라는 희미한 목소리의 전화 목소리를 향해 그는 ‘절대로 상담자 개인의 정보를 이야기하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말라’는 근무 매뉴얼을 어기고 만다. 설사 보험금을 받을 수 있더라도 자살을 해선 안 되는 이유를 고언하는 그의 간절한 태도는 슬픈 과거에서 탈출하려는 본능 같은 것이다. 살아가도 될 만한 인간의 그 무언가를 믿고 지원하지 않고서는 버틸 재간이 없다. 그 미덕을 노출하는 순간, 이건 지독한 약점이 되어 공포의 게임을 호명하게 되고 그 자리에 초대받는다. 사람을 구하기 위한 안전망인 보험이 사람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로 돌변하는 역설의 대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포물에서의 대결은 극단적 ‘콘트라스트’가 적격이다. 준오는 직장 상사와 여자친구에게 두 가지 핀잔을 듣는다. 검은 뿔테 안경에 순진한 티를 졸졸 풍기는 스타일을 놓고 상사는 이 바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혹시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누군가의 일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그의 후천적 본능을 두고 여자친구는 남의 일에 그만 나서라고 투덜댄다. 준오의 상대는 들여다볼수록 뻔뻔스럽고 음흉한 스타일의 박충배(강신일)와 그의 거처 검은집이다.

이 스타일의 대비는 출발부터 의도적으로 복선을 깔아버린다. 준오에게 어린 아들의 자살을 목격하게 만든 박충배의 태도에 노골적으로 음모의 티를 박아버렸다. 그건 박충배가 준오의 진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충배보다 한수 위는 ‘프로페셔널한’ 냉기가 흐르는 사이코패스다. 선천적으로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이 인간유형이야말로 준오의 후천적 본능과 맞부닥쳐 격렬한 소음을 낼 법하다. 인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행위와 인간이라도 못할 게 없는 상상 너머 중 누가 승자인가.

영화 <검은집>은 기시 유스케 원작의 소설에 충실하면서도 이 대결에 새로운 방점을 찍으려 한다. ‘충무로 블루칩’ 황정민이 공포스릴러를 선택한 이유도 귀신보다 더 무서운 인간에 대한 질문에 있지 않았을까. 파열음은 여기서 새어나온다. 준오의 후천적 본능에는 배경이 있지만 사이코패스의 선천적 본능이 목표로 하는 게 무언지 알 수 없다. 사이코패스는 왜 큰돈을 욕망하는가. 마음이 없다면서 설마 소비의 쾌감을 위해서? 느닷없는 어둠이 공포의 심연이 될 수 있을까.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