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소식을 듣고,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가 정말 맞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별명 ‘햄릿’은 좌고우면하는 스타일 때문에 붙은 건데, 문득 사람들에게 아무 별명을 붙여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도 든다(최근 우리 사무실 임아무개양이 정수기 물통을 번쩍번쩍 드는 걸 본 신아무개군이 “임홍만”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재고할 일이다).
김근태 아저씨의 삶이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놓인 적은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요즘처럼 혼자가 아니라 ‘진영’의 생존을 놓고 고뇌한 적은 없었을 것 같다. 그는 불출마 선언문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 독식의 사회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이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80년대 중반 양심수의 대명사였다. (나중에 이근안의 짓으로 밝혀졌지만) 고문당한 사실을 폭로해 그 뒤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실체를 일찍이 까발렸다. 6월 시민항쟁의 불쏘시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은폐조작에 대항한 전국네트워크는 김근태 고문대책위가 이어진 것이었다. 김근태 아저씨는 87년 6월에도 감방에 있었다. 살인적인 전기고문 후유증으로 지금도 걸을 때 왼쪽 팔만 움직인다. 목을 돌리려면 온몸을 같이 돌려야 한다. 그때 그 시절 ‘한따까리’ 안 한 이른바 ‘범여권’ 인사들은 드물겠지만, 김근태는 확실히 민주화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그를 겪은 이들은 “언제나 김근태의 말이 옳다”고 말한다. 그는 이견이 충돌할 때 양쪽 말 다 듣고 ‘처방’을 내놓는다. 그의 말이 옳기도 하겠지만, 지루한 싸움에 지쳐서이기도 할 게다. 김근태 아저씨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인내심일지 모른다. 끝까지 듣고 끝까지 고뇌하는 거. 하지만 조직의 ‘원 오브 뎀’이 고뇌하고 인내하는 것은 미덕일 수 있으나(보통 그런 일은 조직의 ‘고문’이나 ‘위원님’들이 차 마시고 담소하면서 한다), 조직의 리더가 그러는 것은 결정적 때를 놓칠 위험도 있다. 그가 한때 이끌었던 열린우리당을 결국 수습 못하고 탈당하며 “평화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위한) 작은 밀알이 되겠다”고 말한 것은 어찌 보면 심각한 역설이다. 싹 틔울 시간을 넘겨버린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저씨, 미안하다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