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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이야기의 원형

<로미오와 줄리엣>

“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달콤한 향기엔 변화가 없을 것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 대사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로막는 장벽이 그들의 이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같은 상황이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영화화한 <고>에 등장한다. 스기하라가 자신이 재일동포임을 고백하자 방금 전까지 사랑에 눈이 멀었던 여자는 온몸이 얼어버린다. 스스로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을 만드는 순간, 여기서 장미의 이름은 ‘조선이라는 국적’이다. 숀 펜과 다코타 패닝 주연의 <아이 엠 샘>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빠, 아빠는 왜 다른 아빠들이랑 달라요?” 장애인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전에 장애인이라 구분짓는 사회의 편견이 둘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이 영화는 아버지와 딸을 떼어놓는 장미의 이름으로 ‘장애’라는 조건을 들이민다.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의 공포물 <리빙데드3>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을 영리하게 각색한 영화다. 죽은 줄리엣을 살리기 위해 그녀를 좀비로 만들었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가? <리빙데드3>에서 연인을 갈라놓는 장미의 이름은 산 자와 죽은 자, 또는 인간과 좀비라는 정체성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예에서 보듯 영화에서 비슷한 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영화가 서사를 가장 빨리 가장 널리 알리는 매체로 각광받은 덕에 인기있는 이야기는 때와 장소를 바꿔가며 거듭 변신한다. 비슷한 서사의 패턴이 장르로 정착하는가 하면 같은 서사도 장르에 따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번호 특집기사는 영화가 꾸준히 재생하는 이야기들의 원형을 찾아보는 것이다. 인류학이나 언어학이 자주 주제로 삼는 것이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당신은 단지 이야기의 원형을 아는 것만으로 영화의 비밀 하나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올드보이>에서 오이디푸스를, <쉬리>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꽃섬>에서 오디세이를, <미녀는 괴로워>에서 신데렐라를 보는 자만이 감독이 서사의 원형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알아차리는 법이다. 거꾸로 이야기를 만드는 입장에 선다면 원형과 변형을 통해 창작의 비밀 하나를 엿보게 된다. 새로운 이야기의 상당수는 원형을 비틀거나 다른 이야기에 접붙이는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대중적 인기를 염두에 둔 영화라면 더욱더.

물론 원형이 뚜렷한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원형을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영화는 그만큼 뻔한 영화일 가능성이 크다. <배트맨>이나 <슈퍼맨> 시리즈를 예로 들면 성공적인 영화일수록 <쾌걸 조로>의 흔적에서 멀리 있으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도 전형적인 해적 영웅담이 아니라는 점에서 호응을 얻었다. 원형의 매력을 보존하되 시대와 공감할 수 있게 바꾸어내는 능력은 어디에 있을까? 한때는 남의 영화나 소설을 많이 보지 않아야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당신이 천재가 아니라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너무 많이 봐서 자기 것을 못 쓰는 사람보다는 너무 안 봐서 쓰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훨씬 많지 않을까. 이야기의 원형에 대한 탐구는 그런 점에서도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