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젊은이들의 달빛과도 같은 은은한 열광을 받고 있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의 감독 이누도 잇신이 찾아온다. 덩달아 쌍수 들고 환영할 사람도 많으니, 인기 아이돌 ‘아라시’의 다섯 멤버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언더그라운드적 존재이며 다수의 서정만화를 남겼던 나가시마 신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드라마 <황색눈물>을 골격으로 했다. 만화가, 소설가, 가수, 화가를 지망하는 네명의 청춘들과, 이들의 파이팅을 묵묵히 지원하는 노동청년. 이 예술구락부원들이 예술가적 자유를 꿈꾸며 에이스케(니노미야 가즈나리)의 좁은 자취방에 모여들며 영화가 전개된다. 주변부 삶에 애정을 보여왔던 이누도 잇신은 사실상 일본의 현재와 과거에도 관심이 많다. 일등과 금메달만을 기억하던 일본의 고도성장기인 1963년을 뒤돌아보며 감독은 조심스레 세대론을 전달한다. 전쟁 전 세대인 에이스케 어머니의 병과 죽음, 에이스케와 그의 예술을 좇는 친구들, 그리고 영화에서 종종 ‘놀이하는 세대’로 나오는 어린 세대.
“전쟁이 끝났을 때 나는 8살이었다. 모든 걸 잃고 어떤 것도 믿지 못했던 그 시절 나와 내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었던 그것, 그것은 바로 만화였다’라는 에이스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지금의 일본을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그것은 만화다. 더불어 현재의 일본이 망각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어린이용 서정만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에이스케의 꿈은 선정적인 것만을 요구하는 편집진에 의해 좌절된다. 그러나 현재에 그 시절을 되돌아보니 잃어버린 조각들이 있었다. 그것은 만화였고, 서정이었으며, 들떴던 예술구락부의 시절이었다. 그런 면에서 에이스케가 기차 옆 아이에게 만화를 건네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에이스케의 시대는 이 놀이하는 세대를 낳았다.
나른한 재즈 음악을 배경으로 재현된 1960년대 도쿄 거리의 젊은이들은 참으로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패기 결핍이라는 여느 일본 청춘들의 초상에선 이탈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예술에 전적인 실존을 걸지 않은 이들이 결국 진정한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감독의 의도처럼 시대의 탓이라기보다는 어떠한 치열함의 부족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청춘, 결정적 성공도 없지만 완벽한 패배도 없다. 완강한 현실주의일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