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억압 속에서 영적 도약을 그려오던 라스 폰 트리에가 코미디를 만들었다! 10년간 덴마크의 컴퓨터 회사를 운영해온 회사의 실제 소유자 라운(피터 겐츨러)은 사장이 마치 미국에 사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직원들을 속여왔다. 사장은 신비한 존재로 남는 대신, 소심한 자신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직원들과 동료애를 나누자는 전략이다. 직원 전원 해고를 조건으로 회사를 매각하려는 상황에서 라운은 사장을 연기해줄 배우 크리스토퍼(젠스 알비누스)를 고용한다. 배우의 얼치기 연기보다 더욱 실소를 자아내는 것은 그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이다. IT업계에 무지하며, 회의석상에서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장’ 아래서 직원들이 사장의 권력을 그대로 인정하고 벌이는 일화야말로 코미디의 포인트들을 표현한다.
감독이 전작 <도그빌>에서 추구했던 연극과 영화의 결합이라는 형식은 그가 덴마크로 돌아와 만든 이 코미디에서도 ‘무대’와 ‘법정’이라는 아주 기발한 형태로 되살아났다. 연극배우는 자신이, 무대 위의 연극 주인공 ‘갬비니’라는 망상에 빠져 있으며 현실주의자 라운은 강박적인 문서계약으로 공권력이 자기편에 있다고 자신한다. 두개의 빈자리, 무의미하지만 힘을 발휘하는 두개의 맥거핀 ‘갬비니’와 ‘보스’는 각각 망상과 현실의 세계에서 대칭 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전자가 무대 위에서 ‘이것은 연기입니다’라고 스스럼없이 외치는 브레히트적인 캐릭터이고, 후자가 자발적 복종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자 사장의 비겁한 환상 책략이라면 무엇이 정말 망상적인 것일까? 라스트신의 기상천외한 반전은 이 질문에 대한 감독다운 격한 해법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