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는 공무원들의 특징은 △무표정 △눈 안 맞춤 △말 많이 안 함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리 동네 동사무소의 한 공무원은 어느 날 입술이 부르터 있기에 “동민을 위해 노고가 얼마나 많으셨으면 그리 되셨습니까?”라고 묻자,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술 마셨어요”라고 짧게 답하며 등본을 떼줬다. 눈은 맞췄지만 역시 무표정에 말은 많이 안 했다. 취재하느라 만난 공무원들도 말을 아끼는 편이다. 전화기 너머이니 표정까지는 모르겠다. 코딱지 파거나 발가락 사이를 쑤시고 있을 수도 있는데, 뭐 나도 그런 자세로 대하(면 되)니까. 하지만 공무원 중의 으뜸 대통령은 역시 보통 공무원들과 참 다르다.
대통령은 공무원이기 전에 정치인이라고 청와대 참모들은 주장한다. 그래서 지난번 참여정부평가포럼(이하 참평포럼) 특강에서 대통령이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끔찍하다”고 말한 것 등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무원으로서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결정하자,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세다. 대통령은 “제정신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투자하겠느냐”, “한국 지도자가 독재자의 딸이라고 해외 신문에 나면 곤란하다”고도 얘기했다(참고로, 선관위 결정은 그 말의 진실 여부를 가리는 것은 아니다). 선관위는 이런 발언이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거나 특강을 개최한 참평포럼이 선거를 위한 사조직으로 볼 수는 없다고 결론냈다.
각당은 “선관위 결정을 존중한다”고 일단 물러났다(때가 때인지라 탄핵은 못하겠지). 그런데 청와대 혼자 계속 방방 뜨고 있다. 헌법소원이나 행정소송을 내서라도 따져보겠다고 한다. 공직선거법을 바꿔서라도 대통령의 정치활동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도 억울하면 법에 호소할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똘똘 뭉쳐 억울해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선관위 결정 전날인 6월6일은 공휴일인데도 다들 출근해 대책을 논의했단다. 예정된 특강 시간의 두배인 4시간 동안 대통령 혼자 마이크 잡고 할 말 다 하고, 그 내용이 국민에게 알려졌는데, 더이상 누려야 할 정치활동의 자유가 뭐가 있는지 의문이다. 1인 시위를 하거나 대자보 붙이고 찌라시라도 뿌리고 싶은 건가? 국정홍보처며 공무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통해 다 하고 있지 않나. 아무래도 청와대는 국정 최고 책임자를 동아리 대표나 교주로 여기는 모양이다. 남들이 자기들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못 견뎌한다. 참, 특강 주제는 ‘21세기 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였다. 어디로 가건 각자 제 할 일 하며 조용히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