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기 전에> 레이날도 아레나스 지음/ 이룸 펴냄
1990년 12월, 쿠바의 하층민으로 태어나 작가이자 동성애자이자 반체제 인사로 살았던 레이날도 아레나스는 뉴욕에서 스스로 생을 마쳤다. 에이즈 말기로 생사를 넘나들던 나날은 그렇게 끝났다. 아레나스가 쓴 자서전 <해가 지기 전에>의 서문은 같은 해 8월에 쓰여졌다. 1990년은 록 허드슨이 죽은 뒤였고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전으로 에이즈에 대한 인식은 미미했다. 아레나스에게 에이즈는 “걸리면 노년을 거치지 않고 생을 마감한다”는 병 정도였다. 거의 모든 인간에 대한 보복을 담은 마지막 소설을 마무리할 때가 되자 그는 “나의 종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 책의 서문 말미에 적어 넣는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아레나스는 기억하는 첫 번째 ‘맛’의 기억, 두살 때의 그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외부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첫 번째 순간부터의 삶을 새로 쓰기 시작한다.
줄리안 슈나벨 감독이 연출한 <비포 나잇 폴스>의 원작인 이 책은 영화가 채 담지 못했던 그의 삶의 구석구석을 빼놓지 않으려고 쓸어 담고자 하는 기나긴 유서다. 어린 시절 그와 그의 친구들은 흙을 먹곤 했는데, 마술적 사실주의 같은 것에 해당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데 먹을 것이 흙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라나면서 그는 성에 눈을 떴고, 그가 매혹을 느끼는 소년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청년이 되면서 쿠바의 기나긴 독재시대의 시작에 눈을 뜬다. 바티스타 독재가 끝나고 1959년 이후 카스트로 혁명이 시작되었다. 국민의 대부분이 총살을 지지했고, 아레나스 역시 혁명에 가담했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얻을 게 더 많아 보였다. 하지만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깨달았다. “독재 체제에서 아름다움은 항상 체제와 제대로 융합하지 못하는데, 모든 독재가 그 자체적으로 반미학적이고 그로테스크하기 때문이며, 미를 행사하는 것이 독재자와 그의 추종자들이 보기에는 하나의 도피 행위이고 반항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남자들과 관계를 갖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 탄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마이애미를 거쳐 매정한 커다란 공장, 뉴욕에 다다른다.
이 책은 그가 쿠바에 있을 때부터 쓴 것으로, 제목을 <해가 지기 전에>라고 지은 이유는 쿠바의 그가 해가 지기 전에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며, 어두운 숲속에서 도망자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마지막 글은 그가 죽기 직전에 친구들에게 복사해 돌린 이별편지다. “쿠바는 자유로울 것이다. 나는 이미 자유롭다”는 마지막 문장 아래 이름을 적어 넣은 뒤 쓴 ‘출간되기 바람’이라는 문구는 그가 싸워야 했던 해가 진 뒤의 시간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