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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의 미드나잇] 드라마, 역사를 만나 살아나다

실제 범죄 미스터리를 적절히 소재로 활용한 <프리즌 브레이크>

SBS 일요일 밤 12시5분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D. B. 쿠퍼로 의심받는 찰스 웨스트모어랜드(아래)와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

10여년 전 우연히, 한국영화나 드라마의 일본 내 성공 가능성을 다룬 TV다큐에서, 일본 영화업계 전문가가 ‘일본 시청자/관객에게 먹힐 만한 스타 배우’의 등장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지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특정한 스타 한 사람의 등장이 수용자가 느끼는 문화적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그의 가설에 선뜻 동조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욘사마’의 출현과 함께 그 가설은 완벽히 입증되었고, 실제로 욘사마의 존재 자체가 전반적인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일본 내 확산에 엄청나게 기여하게 되었음은 더이상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의 사실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국내에서 그 세력을 ‘태풍급’으로 확산하고 있는 이른바 ‘미드 열풍’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을 거쳐왔다는 사실이다. 애초 미드 열풍은 여성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국내 TV드라마에 실증을 낸 20, 30대 남성들 사이에서 <24>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그 확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게 된 데는, ‘완소남 석호필’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배우 웬트워스 밀러가 20, 30대 여성들을 사로잡으면서, 미드 열풍이 남성 마니아들을 넘어 모든 시청자에게까지 파급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석호필’을 완소남으로 만들어준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드라마 자체의 막강한 힘이다. 재미있게도 그 막강한 <프리즌 브레이크>의 기획 아이디어가 처음 논의되었던 2003년 당시에, 제작사인 폭스는 황당무계해 보일 수 있는 그 아이디어의 성공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 때문에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한 <프리즌 브레이크>에 기회가 온 것은, 더 황당무계한 설정의 <로스트>를 ABC가 방영하기로 한 것에 폭스 제작진이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전히 황당무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현실의 땅바닥으로 끌어내릴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그런 고민으로 제작진이 극중 비중을 높인 등장인물이 찰스 웨스트모어랜드(뮤즈 왓슨)라는 노인 죄수다. 폭스 리버 교도소에서 아주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한 것으로 등장하는 찰스 웨스트모어랜드는, 드라마 초기부터 주변 인물들에게 ‘D. B. 쿠퍼’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다. ‘D. B. 쿠퍼’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너무도 잘 알려진 범죄 미스터리의 주인공이다.

D. B. 쿠퍼 사건은 1971년 11월24일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떠난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여객기에 탑승한 한 남자 승객이 폭탄을 가지고 있다며 여승무원을 협박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장을 통해 관제탑에 자신의 요구조건으로 20만달러(약 2억원)와 낙하산을 준비하게 한 그는, 시애틀 타코마공항에 착륙해 원하는 것을 챙기고 다시 이륙하여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돈과 함께 뛰어내렸다. 중요한 것은 제트기가 추적했었고, 18일 동안 엄청난 수색작업을 벌였음에도 결과적으로 낙하산을 비롯한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승객 중 한명이었던 D. B. 쿠퍼라는 사람이 간단한 조사만 받고 풀려났는데, 일부 언론이 그를 유력한 용의자인 것처럼 오보한다. 바로 그 때문에 이 사건은 지끔까지도 ‘D. B. 쿠퍼 사건’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탑승시 금속탐지기 검사가 의무화되는 등 전세계 항공업계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결국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1980년 2월, 8살 소년이 워싱턴주 컬럼비아강 주변에 가족과 소풍을 갔다가 우연히 D. B. 쿠퍼가 가지고 달아났던 돈과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5800달러를 발견한 것을 빼고는 단서라고 할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흥미로운 배경 때문에 이 사건을 다룬 다양한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었고, <미녀삼총사>, <레니게이드> 등 우리에게 친숙한 미드에서 소재로 다루기까지 했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그런 D. B. 쿠퍼의 미스터리를 드라마 흐름상의 한축으로 둠으로써,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함과 동시에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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