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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소수자

<헤드윅>의 존 카메론 미첼

“성전환 수술은 실패했어. 내 수호천사는 졸고 있었나봐. 내 거기에 남은 건 조그만 살덩어리, 성난 1인치!”(<The Angry Inch >, <헤드윅> O.S.T) 악을 쓰며 노래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기괴한 록가수. 아무리 마음이 열린 사람이라도 입을 떡 벌릴 만큼 ‘헤드윅’은 낯설었다. 하지만 두꺼운 화장과 드랙 복장에 기꺼워 말고 그의 노래에 한번 귀기울여보면, 그 안에 학대와 배신으로 갈가리 찢긴 여린 몸, 그리고 남들보다 유달리 섬세한 영혼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1998년엔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로, 2001년엔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을 뒤흔든 <헤드윅>은 마치 자전적 고백 같은 호소력을 갖고서 비슷한 영혼들을 숱하게 울렸다. 바로 그 ‘헤드윅’ 존 카메론 미첼이 한국에서 <헤드윅> 공연을 열리라곤 한국의 ‘헤드헤즈’(<헤드윅>의 열광적인 팬들을 지칭하는 말)조차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가 뉴욕 이외의 장소에서 <헤드윅> 공연을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 도착한 그를 만난 날, 미첼은 Clne休 오케스트라가 준비한 <숏버스> 특별상영 무대 인사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제한상영가 논란에 휘말렸다가 영화제를 통해 간신히 공개된 <숏버스>는 첫 장면부터 충격이 만만찮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이한 체위, 실제 삽입섹스, 집단난교가 가득하다. 하지만 <헤드윅>을 이해한 이들이라면 미첼의 영화가 불쾌한 포르노가 될 리 없단 걸 짐작했을 터다. <숏버스>의 주인공들은 남편을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 오르가슴을 가장하는 성 상담가, 남자친구를 사랑하면서도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섹스를 할 수 없는 남자 등이다. 모두 몸과 마음의 연결에 장애를 겪거나, 관계 때문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다. “<숏버스>는 섹스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섹스는 한 사람의 삶의 궤적과 방식을 표현하는 언어일 뿐이다. 유년 시절, 성 역할에 대한 견해, 또는 애인에게 이용당한 상처나 정치적 견해까지도 그 사람의 섹스에 영향을 끼친다. <헤드윅>의 언어인 음악처럼, <숏버스>는 섹스를 통해 ‘우리는 혼자일까, 아닐까’를 고민한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미첼은 비전문 배우들을 오디션으로 뽑았다. 지원자들은 자신의 성에 대한 10분짜리 영상편지를 제출해야 했고, 도착한 500여개의 비디오 중 자신의 성경험만 떠벌리거나 그릇된 성관념을 가진 사람들은 제일 먼저 배제됐다. 그래서 그는 <숏버스>에 덧씌워진 검열의 편견이 안타깝다. “슬픈 일이다. 여성이 성폭행당하는 영화는 개봉할 수 있고, 여성이 오르가슴을 찾는 영화는 안 된다는 걸까.” 그는 섹스를 폭력적으로, 또는 피상적으로 다루는 영화들이 버젓이 개봉하는 게 이상하다. “할리우드는 섹스를 비현실적으로 이상화하거나, 사춘기 소년들의 음담패설에 그친다. 할리우드영화의 섹스는 천편일률적인 동작일 뿐 현실이 없다. 포르노그래피도, 많은 예술영화도 그 점은 똑같다.” 몸과 섹스는 그에게 소중한 화두다. “섹스는 본질적으로 웃기고 복잡한 것이다. 잘 안 될 때도 많고, 쾌락, 지루함, 슬픔 같은 다양한 감정이 얽힌다. 그 복잡성을 이해하면 섹스는 유쾌해진다.” 주인공들은 섹스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마음의 응어리를 푼다. <숏버스>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해도 어쩔 수 없다. 타인의 섹스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힘들 테니까. 미첼이 당신에게 부탁하는 건 편견을 잠시 걷어달라는 것뿐이다. “영화를 재미있게 봐주면 좋겠다. 처음엔 (섹스 묘사 때문에) 좀 놀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당신이 처음 섹스했을 때와 같다. 처음엔 헉… 하다가 점점 마음을 나누게 되지 않나? (웃음) 화면에 가득한 페니스에 겁먹지 말라. 성기는 우리 모두 갖고 있는 거니까.” 미첼 자신도 ‘섹스트라’(섹스하는 엑스트라)로 영화에 출연했다. 눈 좋은 관객은 뒤엉킨 나체 중 한 여성에게 오럴섹스를 해주는 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63년생인 그는 에이즈 이슈가 활발하던 80년대 초 커밍아웃했다. 언론이나 운동단체는 그가 게이의 대표자로서 발언해주길 기대하곤 하지만 자신은 게이 정체성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산다. “물론 정체성을 확립하는 어린 시절엔 게이, 여성, 트랜스젠더라는 카테고리를 의식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단계를 지나면 더이상 집착하지 않길 바란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남달랐던’ 어린 시절엔 괴롭힘도 많이 당했지만 지금은 그 경험을 축복으로 여긴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나중엔 깨닫게 됐다. 남들이 놀리는 나의 특성들이 나를 특별하게 해준다는 것을. 나를 더 흥미롭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숏버스> 이후 그는 로널드 달풍의 어린이 애니메이션영화를 기획했다. <숏버스>를 만든 마당에 어떤 제작자가 그의 어린이영화에 돈을 댈까 싶지만, 언젠가는 만들고 말 거란다. 아마 아이들이 그의 메시지를 보고 자란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나은 곳이 되지 않을까. 요즘은 다른 감독의 멋진 작품을 받아봐서, 오랜만에 출연을 고민하고 있단다. 어떤 일을 하든, 미첼와 같이 특별한 감수성을 심장처럼 타고난 사람들(‘축복받은 소수자들’(‘The Gifted and Challenged’라고 그가 칭하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알아볼 것이다. 가장 내밀한 상처까지 이해하는 사려깊은 마음, 그리고 편견을 딛고 서는 용기를 느끼고 교감할 것이다. 아직 그를 잘 모르겠다면 당장 영화 <숏버스>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의 검열 사정을 들은 그는 <숏버스>의 무제한 불법 다운로드를 장려한다고 꼭 기사에 써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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