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육아에서 휴직이다. 아침마다 엄청난 출근 저지 투쟁을 뚫어야 하지만, 발걸음도 상쾌한 건 어쩔수 없다(엄마가 안 벌어오면…, 네가 벌어올 건 아니잖아?). 회사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출근 첫주에는 열심히 일하는 척하다가 진짜 일이 잘돼 그랬고, 둘쨋주에는 지난주에 그랬기에 계속 그랬다(결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가 아니다). 내 일이 근무시간을 계산하기 모호하기도 하지만, 초과근무수당이 안 나와도 별 불만 없다. 오후에 출근해 술집에서 퇴근하고도 월급받던 나날이 분명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딸린 식구가 늘다보니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명언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 분야의 ‘역할모델’들이 최근 보여준 내공에 견주면 나는 한참 멀었다.
올해 초 수원시청 공무원들이 5년 동안 초과근무수당 333억여원을 부당하게 챙긴 사실이 발각됐다(어떤 부서는 전원이 거의 매일 자정까지 일한 걸로 돼 있었단다). 행정자치부가 전면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했고, 많은 관공서에서 개인카드나 지문으로 출퇴근 기록을 관리하기 시작했다(손으로 작성하면 조작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유다). 결과적으로 안 그래도 공사다망한 공무원들을 두번 걸음하게 했다. 서울 성북·영등포·서대문구청 등 몇몇 지자체 공무원들이 퇴근 뒤 저녁 먹고 애 숙제 봐주고 난 뒤 ‘추리닝’과 ‘쓰레빠’ 차림으로 다시 나와 퇴근기록을 남기는 모습이 딱 걸렸다. 주말이면 등산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휴일 근무기록을 ‘찍으러’ 들르기도 한단다. 평일에는 밤 9시 이후 11시 사이에 들르는데, 8시 전까지는 시간외근무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공무원직장협의회와 합의해 일주일에 56시간 이상 근무하지 않기로 정한 상태다. 그 이상 일(한 걸로) 해서 자꾸 받아가면 재정에 구멍이 나기 때문이다. 기본 근무시간인 40시간을 빼면 매일 3시간씩은 초과근무수당을 챙길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밤마실 수당 횡령’ 사건은 암묵적인 소득 보전책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모두가 그렇게 하면 ‘범죄’도 ‘문화’가 된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적발하겠다거나 처벌하겠다거나 무엇보다, 뱉어내게 하겠다는 얘기가 없다. 최소한 ‘한푼 두푼 챙기려다 패가망신 자초한다’는 구호라도 각 관공서에 써 붙일 줄 알았다. 이 뻔뻔함이 더 놀랍다. 이참에 나도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서 취재 방향을 연구하고 밤에 꿈속에서 기사 쓸 궁리한다고 주장해, 24시간 근무한 걸로 인정해달라고 회사에 얘기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