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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가닥 세영을 아시나요

<열세살, 수아>의 이세영

“놀러갈 때는 예쁘게 하고 싶죠. 사생대회 같은 데 갈 때. 머리도 양 갈래로 묶고요. 근데 그러고 가면 애들한테 바로 욕먹죠. (웃음) 요새는 여드름이 자꾸 나는데 애들이 고소해해요. 근데, 여드름 관리는 쌀뜨물이 좋다면서요?” 새침데기인 줄 알았더니 왈가닥이다. <여선생 vs 여제자> 촬영 끝에 “이 파마머리 풀어야 하냐”고 선생님에게 질문한 것이 화근이 되어 “그럼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반 친구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중학교 1학년 때의 눈치없던 시절은 추억으로 지나갔다. “지금 중3인데요, 다 친해졌어요. 친구들이 저를 더 애물단지 취급해요. 하도 왈가닥이라서. 너 이상하게 생긴 게 꼭 외계인 같다고 그러는데, 가까이서 보면 제가 봐도 좀 이상하게 생긴 것 같아요. 하하하.”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도 더 깍쟁이가 되어 나타날 줄 알았는데 돌연 숙맥으로 돌아와 우리를 놀래킨다. 아빠를 잃고 엄마와 어렵게 살고 있는 <열세살, 수아>의 수아. 미숙한 오해와 열병이 불현듯 찾아드는 그 시기에 진짜 엄마를 찾겠다며 집을 나가 꿈에 그리던 여가수를 찾아가는 소녀. 그 소녀를 보고 <여선생 vs 여제자> <아홉살 인생>의 아역배우 이세영을 떠올리기까지는 한참이 걸린다. 두툼한 안경에, 통통한 볼, 모기 소리만한 음성, 매번 자신없이 흐리는 말꼬리, 한 갈래로 어설프게 묶은 머리, 겁 많고 어리벙벙한 표정. 노처녀 선생의 히스테리에 대등하게 대적하던 깍쟁이 소녀의 호기와 시골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홉살 미인도의 웃음은 온데간데없고 평범하고 건강한 범생이가 되어 온 것이다. “<여선생 vs 여제자> 때는 하루에 3시간씩 운동하고 7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 먹고, 군것질도 안 하고, 낮잠도 안 자고, 얼굴에 얼음찜질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삼겹살도 많이 먹고 쉬는 날도 많고…. 조명감독님이 만날 세영아, 밥은, 세영아, 밥은, 하시기에, 그때마다 예, 먹었어요 그랬거든요. 근데 알고보니까 밥을 또 먹었냐고 걱정돼서 그러신 거래요.” (웃음)

사실 이세영의 말을 따르자면 그동안 해온 역할도 깍쟁이라 부르기는 힘들다. “깍쟁이요? 아니에요. <아홉살 인생>에서는 마음에 슬픔이 있는 애예요. <여선생 vs 여제자>에서도 말이 없고 상처가 있는 애고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주로 영화 안 본 분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해요. 영화 찍고 나면 사람들 생각이 많이 바뀌나봐요. 이번 영화 보고 나서는 ‘너 안경도 썼더구나’ 하는데, 그거 원래 제 거예요. 지금 안경 전, 전, 전에 쓰던 거거든요. 또 제 생각에 수아는 아예 찌거나 아예 홀쭉하거나 그래야 맞을 것 같았어요.” 그러니 영화 속 평범한 수아의 모습은 연기 변신을 위한 여배우 이세영의 일종의 설정이었으며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비상한 방법론이었던 모양이다. 너무 작게 해서 안 들린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모기 같은 목소리를 낸 것도 영화 속 수아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자신만의 고안이었다니 그도 그럴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확신은 굳어진다. 가장 예쁘게 나온 장면이 아니라 범생이 수아가 가장 행복해할 때의 바로 그 얼빠진 표정. 이른바 ‘수아 표정 3종 세트’. 첫 번째 약간 눈을 크게 뜨고 놀라기. 두 번째 약간 입을 벌리기. 세 번째 잇몸을 드러내며 침 흘릴 만큼 활짝 웃기. 영화 속 수아가 자신의 환상을 볼 때마다 짓는 그 표정을 직접 지어 보인다.

“<소나기>에 나오는 순수한 소녀 역할도 해보고 싶고, 또 그걸 깨기 위해서 푼수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세영의 지금 고민이라면 대강 두 가지인 것 같다. “학교 축제 때 어떤 고등학생 언니가 혼자 노래하고 춤추고 바이올린 켜는 거 본 적 있는데 부러웠어요. 노래는 화장실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연기는 내가 하고 싶어도 안 써주면 못하잖아요.” 정확한 비교는 아니지만, 여하간 어렴풋이 느끼는 배우로서의 고민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눈 돌릴 틈이 없다면서) 나중에 나이 들어서 첫사랑이 언제예요, 하고 누가 물었을 때, ‘예 스물다섯살이오’ 이렇게 말하게 될까봐 겁나요.” 하긴 이 나이 때야 첫사랑이 늦어지는 게 가장 큰 걱정 중 하나 아닌가. 아무렴, 금방 오게 될 거야, 라고 말해주려다 그 말을 속으로 묻어둔다. 그 미열의 인생에 누가 참견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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