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 광고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나는 나쁜 남자 감별법을 알려주는 UCC를 알아요”. 나쁜 남자(혹은 여자) 매뉴얼이 있어서, 그런 사람을 피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문제는 어떤 유형이 나쁜 남자인지 판단이 어렵고, 어차피 상처는 (상대방의 문제와 무관한 나의/사회의)해석이라는 데 있다.
고통과 저항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전복하는 감동의 명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는 주인공이 사랑한 네댓 명의 남자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최악이다. 폭력과 알코올은 기본. 다른 남자랑 자게 하고 돈벌어 오라며 성매매를 강요하고 여자 앞에서 자살하고…. 극장에서 나오면서 이 중 누가 제일 나쁜 남자일까? 생각해보았다. A를 떠올리는 데 몇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남자는 지금 생각해도 열불이 나는데, 자기가 욕망하는 남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위해 그 남자가 사용한 여자를 자기도 사용해본다. 하지만 A는 마츠코를 때리지 않고 ‘위자료’까지 준 유일한 남자. 반면, 가장 진심으로 마츠코를 사랑한 B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짓을 종합선물세트로 선사한다. 간단히 말해, 여자를 구타한 남자와 여자의 마음을 이용한 남자. 누가 ‘더 나쁜’ 남자인가? 전자는 사법 처리라도 하지, 후자는 고소도 불가능하다.
내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선생님 친구랑 사랑에 빠져, 두 사람을 모두 잃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선물 경제(gift economy)에서 내가 증여자가 되든가, 그들을 텍스트로 삼겠다.” “아, 역시…!” 나는 스승의 혜안에 감탄했다. 이럴 때 희생자가 되지 않는 방법은, 관계를 조직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사건을 텍스트로 만들면, ‘나’는 사건과 분리되고 재현 주체가 되어 재현 대상인 ‘그들’을 맘대로 논할 수 있다. 여러 남자들이 한 여자를 함께 갖고 놀았다고 생각하듯, 여자들도 양다리 걸치는 남자에게 “우리 모두 당했고 너랑 나랑은 웬수”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매애를 되새기며 내 남자를 다른 여자에게 기증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선물 경제는 선물과 증여자 간의 계급 구분을 전제한다. 거래되는 것이 여성이라면 이들을 주고받는 사람은 남성이며, 여성은 남성들 사이의 관계의 통로로서 존재한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나 신부쪽 나이든 남성이 신부를 신랑에게 건네주는 관습은 이러한 사회관계를 반영한 의례다. 교환 행위에서 힘을 갖는 집단은 남성이다. 여성이 자신의 순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포주가 경찰에 성상납…” 이런 일이 그 전형이다. 경찰과 자는 사람은 (여성 포주라 할지라도) 포주가 아니라 포주가 소유한 여성이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한 남자(여자)가 복수(複數)의 여자(남자)와 동시에 사귀거나 찝쩍댔을 때, 여자들은 무지 상처받는다. 더구나 여성들끼리 아는 사이일 때, 대개우 여성들 간의 관계는 파괴된다.
이것은 반대의 경우, 즉, 여자가 복수의 남자와 사귈 때 남자가 받는 상처와는 자상(刺傷)의 부위와 깊이가 다르다(심지어 여러 명의 남자가 한 여성과 섹스했을 때, 남자들은 ‘OO동서’라며 형제애를 확인하지 않는가). 여성들 간의 관계는 남성으로 말미암아 쉽게 파괴되는데, 어떻게 남성들은 여성을 매개로 연대하는 게 가능할까. 남녀 모두, 남성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이성애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학이다. 남자는 여자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지 않지만, 아직도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계급, 자아존중감, 정체성 등이 형성된다. 한마디로, 의사가 될지 의사 부인이 될지를 고민하는 여학생은 있어도, 의사가 될지 의사 남편이 될지를 고민하는 남학생은 없다.
많은 남성들이 성매매와 성폭력을 섹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사랑과 폭력의 연속선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교환당하는 것보다는 폭력(사랑)이 나으니까. 폭력은 교환하지 않음 즉, ‘내 여자 삼음’의 대가인 셈이고 또 그렇게 인식된다. 진짜 문제는 남성 연대를 위한 여성의 교환이다. 그래서 마음을 이용한 남자가 두들겨패는 남자보다 더 나쁜 거다. (이글은 여성주의 인류학자 김은실과 게일 루빈의 글에서 도움 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