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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슬픔과 혼돈의 거리에 선 두 남자
최하나 2007-05-22

양조위 주연, 유위강·맥조휘 감독의 신작 <상성: 상처받은 도시> 홍콩 기자회견 현장

기자회견에 참석한 맥조휘, 유위강(왼쪽부터) 감독.

음습한 뒷골목과 불야성의 도심이 등을 맞대고 호흡하는 곳. 유위강·맥조휘 감독에게 홍콩은 상성(傷城), 즉 상처받은 도시다. 2002년 <무간도>로 잊혀져가던 홍콩 누아르를 새롭게 불러낸 두 감독은 이듬해 2편의 속편을 연달아 내놓으며 하나의 소우주를 완성했고, 숨막히는 무간지옥의 행간에 홍콩 반환을 전후로 한 열망과 불안의 공기를 새겨 넣었다. 이후 3년. 그 사이 <이니셜 D-극장판>으로 일본의 산길에서 쾌속의 레이싱을 선보였던 두 감독은 <상성: 상처받은 도시>(이하 <상성>)를 들고 홍콩의 밤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거리를 배회하는 것은 두명의 남자다.

선후배 형사 사이인 유정희(양조위)와 아방(금성무)은 친형제와 같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던 아방은 여자친구가 자살로 목숨을 끊자 형사를 그만두고 술독에 빠져든다. 그로부터 3년 뒤, 유정희의 장인이 살해당하고 유정희의 아내 숙진(서정뢰)은 사립탐정이 된 아방에게 독자적으로 사건을 재수사해줄 것을 부탁한다. 사건의 뒤를 밟던 아방은 점차 살인의 배후에 유정희가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품게 된다.

배우 양조위.

두 남자와 이중생활,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의 대립. <상성>는 많은 면에서 <무간도>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유위강·맥조휘의 누아르 세계에 영웅은 존재하지 않고, 의리와 충성이라는 테마는 복수의 무게에 잠식당한다. 총격신의 비장한 미장센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유혈의 고투다. 멋들어지게 죽음을 장식하는 대신, 거짓과 배신을 거듭하는 자들의 몸부림. <상성> 역시 비열한 거리의 자장 안에 있다. 그러나 두 인물이 빚어내는 긴장감을 극도로 팽팽하게 잡아당겼던 <무간도>와 달리 <상성>은 대립의 날이 무디다. 사건의 결정적 진실을 초반에 폭로한 탓에 스릴러적인 긴장감이 느슨해진 대신, 영화는 두 남자의 아픔을 곱씹는 데 주목한다. “반환 이후 본토인들이 밀려 들어오면서, 슬픈 이야기들이 함께 시작됐다”고 말하는 두 감독은 1997년 이후 가속화한 이주의 흐름을 거대한 슬픔의 이동으로 해석한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이주한 이들의 열기로 도시는 부글대지만, 그 안에 잠재된 상처는 치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곪아가고 있다. 말하자면, 유정희와 아방은 홍콩이라는 도시가 내재한 혼돈의 상징인 셈이다.

유위강·맥조휘 감독은 <상성>에서도 역시 촬영과 각본으로 각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홍콩의 밤거리를 조감하는 고공촬영은 야간 항공촬영이 금지된 홍콩에서 “제대로 된 홍콩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며 강력하게 허가를 요청한 유위강 감독이 이루어낸 성과다. 맥조휘 감독은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아방의 3년간의 이야기에 대한 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상성>은 <무간도>에 이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가 확정된 상태다. 반환 10년, ‘상처받은 도시’ 홍콩의 노래가 두 남자의 갈림길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5월31일 극장가에서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양조위 인터뷰

“악역 연기에 도전의식이 발동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디파티드>에 이어 <상성>을 리메이크할 영화에서도 당신의 캐릭터를 연기하게 됐다. =아주 기분 좋고, 행복한 일이다. 사실 홍콩의 이야기가 미국시장에서 리메이크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그 같은 톱스타가 열연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흐뭇하다. (웃음)

-<상성>에서 악역을 맡았는데, 그동안의 이미지가 훼손될 것이라는 걱정은 없었나. =원래는 아방 역을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답습하는 것 같아 마음을 바꿨다. 악역을 연기한다는 것에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있었다. 나는 나고, 영화 속 연기는 유정희의 몫이기 때문에 이미지 훼손은 개의치 않았다.

-당신은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통해 많이 알려졌고, 최근엔 유위강·맥조휘 감독과 함께 한 작업들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들의 스타일을 비교해본다면. =유위강 감독이 주관적인 각도에서 작업한다면, 맥조휘 감독은 객관적인 차원에서 각을 잡는 스타일이다. 일단 호흡을 맞추기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긴 시간을 투자하는 특징이 있다. 왕가위 감독은…다들 이야기 안 해도 알지 않나. 그분은 엽기적이니까. (웃음) 아무런 계획도 없이 촬영에 들어가니까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그저 오리무중인 사람이다. (웃음)

-25년간의 연기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가장 최근에 찍은 영화다. (웃음) 아무래도 지나간 영화는 계속 보게 되고, 결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금방 찍은 영화는 아직 결점을 찾기 전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웃음)

-어떻게 캐릭터를 구축하나. 양조위만의 연기론을 말해본다면. =내가 캐릭터에 몰두하는 과정은 당신이 출생해서 지금 이순간에 이르는 과정과 똑같다.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가게 되는 것처럼 시나리오를 받으면 나는 가상의 일생을 상상한다. 이 사람이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고,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취미와 행동 하나하나를 연구해서 나 자신을 세뇌하는 작업을 한다.

-차기적으로 <적벽대전>을 촬영 중이다. 처음에 거절했다가 번복했는데. =<상성> 이후 나 자신을 가다듬는 시간이 부족했고, 리안 감독의 작품(<욕망, 신중>) 출연도 결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벽대전>이 캐스팅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도와주는 의미로 출연을 결정했다. 사실 <상성>이 끝나고나서 유정희 캐릭터 때문에 우울하고 힘들었는데, 이렇게 진행이 되어 결과적으로 좋게 생각한다.

-홍콩영화의 침체기에 홍콩 영화인들은 개런티를 낮추거나 해외로 진출하는 등의 노력을 했는데, 홍콩영화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홍콩영화가 위축되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것도 결국은 하나의 과정이지 끝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홍콩영화가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합작하다보니 영화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세계의 영화시장에서 많은 것들을 흡수해서 돌아왔다. 그러한 움직임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고, 장기적으로 홍콩영화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들었다. 연기자로서의 삶이 인간 양조위를 어떻게 변화시킨 것 같나. =연기를 통해 나의 내성적인 성향을 극복하게 됐다. 사실 연기자로서, 나는 굉장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TV드라마로 시작했는데 연기해오면서 왕가위, 리안, 오우삼, 유위강 감독 등 좋은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새로운 영화를 접할 때마다 새로운 행복감, 즐거움이 반복되는데 이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유위강·맥조휘 감독 인터뷰

“상성은 홍콩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모든 상처입은 도시다”

-<무간도>에 이어 <상성>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가 확정됐는데. =(유) 정말 행복하다. 일단 수입이 늘었다. (웃음) 홍콩의 제작진이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는데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영화의 제목을 상성, 상처받은 도시로 명명한 이유는. =(맥) 홍콩이 곧 상처입은 도시다. 97년 홍콩이 반환되면서 본토에서 신이민이 시작됐고, 슬픈 이야기들이 시작됐다. 2003년에는 사스(SARS)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사실 상성은 홍콩뿐 아니라 뉴욕, 이라크 등 세계 각지의 모든 상처입은 도시를 의미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공동연출을 맡았는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나. =(맥) 공동으로 연출하는 것은 다양한 의견을 통해 최선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유) 내가 하기 싫어서 미루는 것을 맥 감독이 한다는 점에서 좋다. (웃음) 내가 굉장히 급한 성격인데, 내가 놓치고 가는 것들을 맥 감독이 일러주고 환기해주는 역할을 한다. 대화할 때 항상 음악을 틀고 한다는 것도 우리 작업의 특징이다.

-양조위의 역할이 바뀌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맥) 본래 양조위를 아방으로 캐스팅하고 나서, 유정희를 연기할 배우를 찾기 위해 몇달을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배우가 없더라. 결국 양조위에게 제안했더니 “생각도 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더라. (웃음) 그런데 두달 지나고 나서 그한테서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유) 양조위가 20년 이상 연기를 해왔지만, 그중 어떤 역할도 이처럼 악랄하고 간사했던 적이 없다. 그의 이미지를 뒤집을 수 있는 역할을 맡겨놓고 굉장히 설&#47132;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으로서도 굉장히 놀랐다.

-초반에 결정적인 단서를 드러낸 까닭은 무엇인가. =(맥) 살인사건을 다루는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요즘 관객은 추리력이 뛰어나서, 순식간에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한다. 그런 것들을 다 뒤집고, 새로운 충격을 주고 싶었다.

-합작영화 제작이 붐을 이루고 있다. 유 감독은 <데이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합작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맥)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과 의사소통의 문제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유) <데이지>를 통해 좋은 경험을 했다. 합작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우와 스탭들이 자국 내의 좋은 조건과 위치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데이지> 때는 전지현, 정우성, 이정재가 기꺼이 그렇게 해주어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김아중과 차기작을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유) 김아중이 <무간도>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밥이나 먹자 해서 만났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웃음) 최근 한국 영화인들과 접촉하는 기회가 많아져서 좋다. 이번 홍콩영화제 때도 김혜수, 이병헌을 만나 좋은 시간을 가졌다. 할리우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한국, 홍콩, 일본 등 아시아 영화인들이 힘을 합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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