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D 서비스로 도약하라!” 하락을 거듭하는 부가판권 시장을 되살려 한국영화가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제작자들이 VOD 시장 활성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는 극심한 장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부가판권 수익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제협의 한 관계자는 “제작비 절감만으로 수익률을 높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 “VOD 시장을 키워내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협은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부가판권 시장 현황 연구 △부가판권 계약서 표준화 △저작권 신탁사업 등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장동찬 제협 사무처장은 “2003년부터 제협 차원에서 VOD 서비스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있긴 했으나 전체 영화계의 이슈로 확산되지 못했다”면서 “올해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영화인협의회가 결성됐고 이를 계기로 VOD에 대한 관심이 다시 촉발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가판권 시장을 되살리는 것이 가능할까. 노골적으로 말해 죽은 자식 무엇 만지는 격은 아닌가. 기존의 홀드백은 무너졌고, 여전히 불법복제는 만연하고, 수렁에 빠진 비디오·DVD는 아사 직전이고, 구애하던 공중파는 외면하고, 기세등등하던 위성 PPV는 제자리걸음인데, VOD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 “극장을 제외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 늘어났는데도 부가판권 수익은 감소하는 이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이 있긴 한 걸까.
VOD가 살면 부가판권 시장도 산다?
해법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다. 먼저 제협이 VOD 시장을 붙들고 늘어진 절박한 이유를 뜯어보자. 극장에서 흥행하지 못하면 곧바로 판을 접어야 하는 수익구조의 기형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2005년 기준으로 전체 수익 중 극장 수익이 차지하는 평균 비중은 약 78%였다. 한류 바람 덕에 이때만 해도 해외 수출이 12%가량 됐다. 하지만 지난해엔 <그해 여름>을 제외하면 변변한 해외수출 영화가 없었다. 추산이긴 하지만 극장 수익 비중은 85%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VOD가 유일한 답이다. 생각해보라. 연간 영화 관람횟수가 3회가 넘었다. 더이상 폭발적으로 늘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류는 사그라졌고, 비디오는 다 죽었고, DVD는 전체 수익 중 2.5% 수준에 불과하다. 케이블쪽은 거대 투자·배급사들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VOD뿐 아닌가. 고통 분담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하며 제작비를 계속 줄여나갈 순 없다.” 한 제작자의 토로가 일러주듯, 기형적인 수익구조 개선 없이 한국영화의 위기 탈출은 불가능하다. 또 VOD 시장 활성화야말로 수익구조를 뜯어고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좀더 좁혀보자. VOD 시장의 활성화를 꾀할 경우, 부가판권 시장이 회생할 수 있을까. 인터넷을 기반으로 VOD 사업을 펼치는 한 회사에 따르면, “온라인 VOD 시장은 1년 전에 약 300억원 정도의 매출액을 기록했는데 지금은 약 120억∼15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영파라치 등을 도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불법파일은 여전히 기승이다. 제협쪽에선 “한국영화는 불법파일로 말미암은 피해액이 2500억원에서 많게는 3천억원”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관건은 불법복제 근절과 대형 극장-케이블 자본
제협이 불법복제 근절을 위해 3월에 78개 영화사가 결성한 영화인협의회와 보조를 맞춰 VOD 서비스 활성화를 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인협의회는 극장과 방송을 통해 불법 다운로드를 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웹하드, P2P, UCC, 포털 등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영상저작물 저작권 침해 행위에 대해서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고, 합법적인 유료 서비스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한다는 계획. 제협은 이 같은 영화인협의회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울 예정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산이 있다. 바로 공룡 멀티플렉스와 거대 케이블 채널을 소유한 CJ, 오리온 등이다. 영화인회의 김도학 연구원은 “관건은 제작자들이 극장-케이블 자본을 어떻게 설득하고 또 넘어설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CJ와 쇼박스 등이 그동안 케이블 관련 계열사 등에 “헐값으로 판권을 넘기는 바람에” 정작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경쟁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결국 판권가를 떨어뜨려 부가판권 시장이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감소시켰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을 모르지 않는 제협이 그렇다면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거대 기업들과 만날 테이블을 마련한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수중에 넣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제협은 차승재 회장 등이 CJ 등과 만나고 있고,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제작자들의 제안에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제작자들이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담아 목소리를 높일 경우, CJ와 오리온 등이 이에 순순히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영화계에서는 VOD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제작자들의 노력이 자칫 또 다른 거대 사업자를 키우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혹여 CJ나 쇼박스 등이 VOD 판권을 팔겠다고 나서고, 또 다른 거대 사업자가 판권을 되사는 결과를 낳는다면, 제작자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달라질 게 없다. 영진위의 한 관계자는 “부가판권 시장을 키우고 또 그 안에서 제작자들이 제 몫을 찾으려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통신사 본격진입에도 기대
한편, 일각에서는 충무로에 발을 걸치고 있는 KT, SKT 등 이동통신회사들의 본격적인 진입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한 제작자는 “부가판권 시장의 파이를 키우려면 콘텐츠를 원하는 모든 사이트에 제공해 관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대신 그에 걸맞은 적절한 과금을 부여해 그 수익을 나누면 된다”면서 “이통사들은 극장과 케이블이 없다. 다시 말하자면, 콘텐츠만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들은 기존의 사업자들처럼 모든 판권을 독점하겠다는 자세를 취하진 않을 것이다”라고 예상한다.
불법파일 유포를 억제하고 유료화 서비스를 통해 수익구조를 창출한 음악부문에선, 유통사업자들은 배불렀으나 창작자들은 여전히 배고픈 상태다. 제협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하나다. 파이를 키우기 위한 자구 노력을 계속하되, 음악계처럼 죽 쒀서 남 줄 순 없다는 의지가 들린다. IPTV, 케이블, 모바일 등 콘텐츠 확보를 위한 뉴미디어의 무한경쟁 시대, 영화계는 뒤늦게나마 그동안 방치했던 제 몫 찾기와 전체 한국 영화산업의 취약한 수익률 구조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나섰다.
문제를 파헤치니 답은 이것뿐이더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이준동 인터뷰
-VOD 서비스 활성화 방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한국영화의 위기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영화가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부가판권이 주저앉아 있고, 극장 의존도는 80%가 넘어서는 상황 아닌가. 제작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수익률을 높일 수 없다. 어떻게든 부가판권 시장을 키워야 하고, VOD 서비스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부가판권이 망가진 까닭은 뭔가. =디지털 환경이 굉장히 짧은 시간에 조성됐는데, 그동안 영화계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불법복제 파일의 유포가 대표적이다. 현재 128개사가 참여한 영화인협의회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캠페인은 산업 전체가 붕괴 위기에 처해 있음을 관객에게 알리기 위한 일종의 동의 작업이다. 그리고 기술적 책임을 방관한 OSP 업체들과 의도적인 업로드 네티즌은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다. 단순히 파일을 다운로드한 이들은 이러한 상황의 피해자라고 생각해 대상에서 제외했다.
-문화관광부가 온라인 저작권 신탁 관리 단체로 지정한 지 1년이 넘었다. =2005년 11월6일에 결정됐는데. 지난해에는 스크린쿼터와 FTA 싸움을 하느라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제작자들에게 실질적인 수익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 같다. =제협이 저작권 신탁 업무를 직접 할 만한 여력은 없다. 그래서 그동안 이쪽 사업을 해온 업체들을 중심으로 위탁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안적인 윈도를 구축하기 위해서 몇 가지 원칙을 공유하고 있다. 월 정액제가 아닌 종량제 형태의 과금 체계여야 하고, 극장 종영 뒤 최소 1년 동안은 아직 생명력있는 콘텐츠이므로 PPV 원칙을 적용하는 등이다.
-CJ, 쇼박스 등과 같은 투자·배급사들과 테이블을 마련한다고 들었다. =이미 CJ쪽과는 실무진들이 만나고 있고, 김주성 CJ 대표와 차승재 제협 회장이 만나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질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구조를 만들자는 데 합의했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