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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등국 여전사의 투쟁기
2001-10-18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시리즈 <제임스 카메론의 다크 엔젤>

내가 처음으로 제시카 알바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경위는, 순전히 데본 사와의 이름만 믿고 간 영화 <크레이지 핸드>(Idle Hands)였다. 그 와중에 정말로,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제시카 알바였다. 한마디로 제시카 알바의 역은 ‘예쁘고 골 빈’ 여학생이었는데, 꺄악, 너무도 귀여웠다! 헤퍼 보이는 귀여운 미소, 짧아 보이지만 늘씬늘씬한 몸매. 왜 주인공이 목숨걸고 보호해야 하는지 당위성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미국 사는 친구가 제시카 알바 이야기를 꺼내서 다시 기억이 났다. 바로 TV시리즈 <다크 엔젤>의 주인공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소문으로만 들은 <다크 엔젤> 주인공은 날아다니고 때리고 부수고 난리가 아니던데? 그 친구가 테이프를 보내줘서 봤는데, 아, 멋있었다. 내가 알던 예쁘고 골 빈 아가씨는 어느 사이에 예쁘고 매력적인 아가씨로 변해 있었다.

가까운 미래. 전사를 양성하려는 목적 아래 유전자 조합으로 슈퍼인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이 탈출하고, 그중 한명인 맥스는 신분을 숨기며 살아간다. 핵폭발로 폐허가 된 미국. 3등국으로 전락한 미국은 온갖 정치인과 기업주들의 비리로 넘치고 사람들은 핍박받으며 살고 있다. 이에 항거하여 정치인과 기업주의 비리를 밝혀내는 사이버 저널리스트 필명 ‘아이즈 온리’ 로건. 맥스는 로건을 만나게 되고 함께 악을 응징하는 데 동참하게 된다.

이 <다크 엔젤>의 배경은 황폐해진 시애틀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손길 덕일까, 핵전쟁이 나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다만 살기 위한 투쟁의 지옥으로 변할 뿐이다. 이 드라마에서 제일 재미있는 설정은 미국이 3등국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소탕해야 하는) 밀거래와 부정부패가 판을 친다는 것이다. 이 설정만 빼고 보면, 기자와 슈퍼맨 남녀만 뒤집혔다는 게 금방 보인다. 게다가 슈퍼맨이 눈에 보이는 악당만 처치하는 것처럼, 맥스는 일단 로건이 포착해낸 부정부패만 처리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는 악의 무리는 우리가 퇴치한다! 라는 단순무지한 논리가 없다. 굳이 구분을 두자면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다행히 세월은 많이 흘렀기에, <다크 엔젤>은 ‘단순무식 정의만세’에서 한발 유보해서 평범함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정의를 지키는가, 하는 자기성찰의 자세를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한없이 진지해질 수는 있지만, 진지함보다는 활기를 주는 존재가 바로 주인공 맥스다. 사실 맥스라는 존재가 여러 유전자를 조합해서 만들어낸 키메라인 것처럼, 맥스라는 주인공의 성격은 여기저기서 다 보던 인물을 데려온 것만 같다. 뛰어난 여자 전사는 <니키타>, 10대의 패기만만함은 <미녀와 뱀파이어>, 능력과 상관없는 우울증은 <프리텐더 제로드>, 남자와 동등하다 못해 더 활동적인 여자는 <X파일>. 그러나 맥스는 단지 총합이 아니다. 그 총합에 매력을 더 한다. 그것이 제시카 알바다. 지금까지의 명민한 캐릭터들이 보통 뛰어난 능력을 갖췄는데도 자기모멸 같은 정신적 약점이나 결함 때문에 설설 기는 경향이 있는데, 맥스는 전혀 아니다. 감정에 휘둘리면서도 일 하나만은 철두철미하게 해낸다. 감정과 상관없이 냉철하면서도 재빠른 판단력으로 수시로 전략을 바꿔가는 자가 보통 게릴라전에서 승리하게 되어 있다. 맥스는 딱 그 전형이다(여기에 필적할 인물은 <하쉬 렐름>의 오마르 산티아고 정도일까?) 이제 여유만만한 자세까지 가세하면, 그게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된다. 자기보다 두배는 더 큰 남자를 때려눕히기 전이나 뒤의 그 헤퍼 보이는 미소를 보면 안다. 이미 승리한 자의 여유다. 그래서 맥스는 진정한 힘을 가진 자가 된다. 그 힘이 제시카 알바의 몸 전체를 매혹적으로 감싸안고 있다.

에피소드 중에 맥스가 자기 몸엔 고양이 성질이 들어 있어 어느 시기가 되면 진짜 발정난 고양이처럼 남자들만 보면 헤퍼진다는 말을 하는데, 맥스/제시카 알바는 정말로 고양이를 보는 것 같다. 그것도 다 큰 고양이가 아니라 새끼고양이를 보는 것 같다. 새끼고양이의 매력은 누가 뭐래도 귀엽지만, 그 귀여운 몸 안에 고양이 특유의 매력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 큰 고양이는 범접하기 힘들어서 무서울 수도 있지만, 새끼 고양이는 접근하기가 쉽다. 그러나 가까이서 바라보면 역시 고양이는 고양이. 귀여움 속에 날렵함이 빛난다. 고양이의 눈은 빛나는 만큼 속을 읽을 수가 없다. 그게 딱 맥스의 이미지다. (비교적) 짧은 팔다리에도 불구하고 제시카 알바는 그렇게 사람을 <다크 엔젤> 앞으로 끌어들인다.

이 <다크 엔젤>이 지금까지의 비밀조직 시리즈와 상당히 다른 점은, 굉장히 게릴라적이고 사조직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로건은 사장 겸 정보수집 영업부장, 맥스는 해결사 행동요원, 블링은 시다(히히. 블링을 볼 때마다 <다크 엔젤>이 <소공녀>으로 보인다). 이 셋이 시애틀을 악의 무리에서 지키는 것이다. 만세!

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