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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숨>과 <밀양>

<숨>

<밀양>

얼마 전 영화평론가 황진미씨에게 문자가 왔다.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었다. 당분간 영화를 보러 가거나 영화평을 쓰는 일이 힘들겠지만 곧 몸을 추스르고 돌아오겠노라 전했다. 창간 12주년 기념호에서 정윤철 감독이 한 인터뷰를 읽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황진미씨는 감독 입장에선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거침없는 비판을 하는 평론가이며 할 말을 참지 못하는 열정적인 논객이다. 당분간 황진미씨가 없어서 감독들 마음이 편하겠군 싶으면서도 뭔가 화끈한 게 없으니 허전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그가 김기덕의 <>을 보고 쓴 20자평이 눈에 띄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아동문학임을 증명하는 걸작.” 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이 아동문학은 아니라고 보지만 <우행시>와 <>을 비교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창조적 표현, 혹은 영화적 표현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 <우행시>는 마음의 상처를 지닌 여자와 사형수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영화다. 같은 소재를 놓고 다루는 방식은 완전히 다른데 <우행시>의 전개는 대체로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어색한 만남이 있고 서로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리며 아픔을 나눌 수 있게 되자 죽음이 다가온다. 남자는 원래 착한 사람이었음이 알려지고 여자가 어머니를 미워하는 사연도 밝혀진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그만큼 친절하고 익숙하며 작정하고 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은 도무지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 면회실 사방에 벽지를 바르고 봄, 여름, 가을을 노래할 때 김기덕의 다른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본 사람이라도 당황하게 된다. 사계절을 이렇게 표현하는 영화가 또 있었던가. 서로 마음을 열기까지 밀고 당기는 것도 없고 사형수가 주인공인데도 사형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없다. 남자와 여자의 사연도 어렴풋이 짐작될 뿐 다수 관객의 궁금증에 대한 대답이나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이 영화는 주지 않는다. 그래서 두 영화 가운데 어느 하나만 가치있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당연히 각자의 몫이 따로 있지만 어떤 것이 더 흔하고 어떤 것이 더 귀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이야기와 표현이 높이 평가받는 것이 옳지 않을까.

<밀양>도 비슷한 예다. 유괴가 등장하는 탓에 <밀양>을 보면서 <그놈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놈 목소리>는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의 괴로움과 분노를 함께 느껴보라고 말하는 영화다. 실제로 김남주가 가슴에 멍이 들도록 자기 가슴을 때리는 장면은 보고만 있어도 그 아픔이 절절히 느껴진다. 그에 비해 <밀양>에서 유괴는 사건의 중대성에 비쳐 너무도 간단히 지나간다. 협박전화가 오고 돈을 전하고 나면 다음 장면에 범인은 이미 잡혀 있다. 그러니까 <밀양>은 유괴범에 대한 공분을 끌어내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 <그놈 목소리>가 그놈만 잡으면 된다고 말하는 영화라면 <밀양>은 그래서 그놈만 잡으면 다시 행복해지는지 되묻는다. <그놈 목소리>가 제기하지 않은 그 질문이 <밀양>을 다른 차원의 영화로 만든다. 그건 사람의 불행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놈 목소리>가 개인의 운으로 바라본 사건을 <밀양>은 인간이 타고나는 어쩔 수 없는 조건으로 다룬다. 꼭 유괴가 아니어도 그런 아픔과 좌절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밀양>이 <그놈 목소리>보다 좋은 영화인 것은 그런 사려깊은 시선 때문이다.

P.S.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개인 사정상 당분간 글을 쓸 수 없다고 알려왔다. 그동안은 ‘전영객잔’을 허문영, 김소영 두 평론가가 번갈아 맡기로 했다. 그리고 2주 뒤부터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필자로 남재일 문화평론가 대신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이 합류할 예정이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도 이번주 전도연편이 마지막임을 알려야겠다.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김혜리가 만난 사람’ 시즌2를 시작할 계획이니 기다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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