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1일부터 시작되는 열흘간의 노동절 휴가 때면 베이징의 ‘예술구’들은 술렁인다. 폐쇄된 옛 공장 건물이 갤러리와 스튜디오로 개조되면서 예술촌으로 탈바꿈한 ‘798 예술구’와 과거 이과두주를 만들던 공장이었으나 젊은 미술가들이 들어와 보금자리를 튼 ‘지우창 예술구’ 등 베이징 동북쪽에만 서너개의 예술구들이 있다. 이곳에서 노동절 기간에 열리는 전시회와 각종 음악축제들은 중국의 현대 예술을 한눈에 즐길 수 있다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더욱 주목할 만한 행사는 베이징 외곽의 한 사설 미술관에서 조용하고도 고집스럽게 열리고 있다. 바로 ‘제4회 중국다큐멘터리필름페스티벌’이다.
이 행사는 페스티벌이라고 할 만한 외양을 미처 갖추지 못한 작은 영화제지만 참여한 감독들과 관객의 열정과 순수함은 영화를 향한 날것 그대로였다. 2003년에 시작된 이 영화제는 독립영화인들이 진행하기 때문에 예산과 장소에 제한을 받아왔고, 지난해부터 베이징 외곽에 있는 송주앙미술관에서 영화제를 지원하고 장소를 제공하면서 그나마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 그러나 영세한 규모에도 수많은 우수한 독립다큐멘터리가 영화제를 통해 빛을 얻어왔다. 중국 다큐멘터리 역사에 새 기록을 쓴 것으로 평가되면서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던 왕빙의 <철서구>(鐵西區)와 천웨이쥔의 <그래도 사는 게 나아>, 황원하이의 <꿈여행> 등이 그것이다. 왕빙 감독의 <[철서구>는 한 때 100만명 넘는 노동자가 일하던 티에시 공업지구의 쇠퇴와, 그 주민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러닝타임이 무려 9시간에 이르며 <녹>, <철로> 그리고 <폐허>라는 제목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올해는 경쟁부문 10작품을 포함해 모두 24편이 월드 혹은 아시아 프리미어로 상영되었다. 일부 작품은 국가 부서인 광전총국의 검열을 받지 않아 상영이 지연되거나 다음날로 연기되기도 했으나 집행위원들의 노력 끝에 다행히 전 작품을 무사히 상영할 수 있었다. 미술관 안에 마련된 150석 규모의 상영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관객 외에도 베이징시 정부가 파견한 비밀사복경찰들이 상영기간 내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참석한 관객과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열정은 더욱 빛을 발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끝없이 질문이 쏟아졌고, 하루 상영이 끝나고 모두가 함께하는 토론회는 자정까지 이어졌으며, 때론 오전 2시까지 영화상영이 계속되기도 했다.
중국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들은 감동과 숙연함, 비애감 등을 한꺼번에 전해준다. 펑이엔의 <지엔아이>, 린신의 <삼리동>, 추이즈언의 <우리는 (공산주의의) 생략부호>, 쨔오다용의 <난징루> 등은 관객의 진심어린 박수를 이끌어낸 올해의 수작들이다. 이 작품들이 자국 관객과 만나기란 아무래도 요원할 듯하다. 아마도 세계의 다른 영화 관객과 먼저 만나 중국 밖에서 먼저 중국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