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못 심각한 제목 <숙명>. 송승헌의 새 작품이 결정됐다. 2004년 겨울, 갑작스런 군 입대로 공백에 들어갔던 송승헌이 3년여 만에 얼굴을 내밀었다. 병역문제로 시끄러웠던 시간의 정적을 깬 소식이라 모양새도 조심스럽다. 한국의 남자배우라면 군대는 숙명인 걸까. 연예인이 짊어진 도덕의 무게는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더욱 커 보인다. 공인이란 말로 오해되고, 스타라는 수식어로 치장되는 직업. 안타깝지만 이들에겐 모범생의 책무가 따른다. 연기로 평가되고, 태도로 점검받는다. 세상의 모든 말은 항상 스타를 향해 무딘 날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다. 스타는 의외로 만만한 존재인 걸까.
송승헌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수많은 잡음을 들었다. 군대 입대 당시의 뉴스부터, 제대 이후 복귀작에 대한 소식까지. 송승헌이 없는 동안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말들을 쏟아냈다. 무뎌진 시간 속에서 그의 소식은 포털사이트 뉴스 게시판의 뒷면으로 조금씩 멀어져갔지만, 그 잔향은 여전히 요동의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제대는 ‘팝한 이벤트 창’처럼 떠올랐다. 미루어놓은 과제를 마친 그에게 한국 언론은 이상한 용서의 손짓을 보냈고, 그는 머리 숙여 제대를 신고했다. 과도하게 과열된 냄비는 의외로 빨리 식는다.
그가 드라마를 떠나 산골의 부대로 들어가던 무렵, 일본에선 <가을동화> <여름향기>의 인기로 송승헌이 한류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에선 군인으로, 남자로 다시 태어난 그지만 일본에선 한류로 별이 되었다. 3년여의 공백기 동안 송승헌의 소식은 한국보다 일본 게시판에서 더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사진집 <태양>을 내며 긴자의 백화점에서 가진 사인회에는 230명 한정 행사임에도 2만2천여명의 사람들이 몰려왔고, 일본의 <후지TV>는 그가 제대 이후 가진 일본 팬미팅 현장을 특집방송으로 방영했다. 그는 고개 숙여 들어간 공백을 지나 매우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일본으로 우회했다. 남자배우에게 군대와 한국이란 장소는 그렇게 조심스럽다. 그리고 <숙명>. 현재 한국에서 방영 중인 모 CF의 광고주는 송승헌의 “원칙을 고수한 태도를 높이 샀다”고 말했다. 부서진 이파리를 하나씩 주워 모으듯 그는 자세를 가다듬고 한국에서의 활동을 재개했다. “한결 여유롭게”,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 이제는 그에게서 무거운 짐을 내려줘야 하지 않을까. 배우는 도덕적일 때보다 솔직할 때 한층 더 흥미롭다.
-드디어 복귀작이 정해졌다. 김해곤 감독의 영화 <숙명>인데,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제대를 하고 처음에는 드라마를 준비했다. 아무래도 기다리는 팬들에게 빨리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드라마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대본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숙명> 시나리오를 읽게 되었고, 김해곤 감독님이 연출한다는 말에 믿음이 갔다. 감독님의 전작들은 흥행을 떠나 인간 냄새가 많이 나서 좋았다. 드라마가 아닌 영화를 하면 촬영기간과 개봉까지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겠지만, 천천히 가더라도 좀더 완성도있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숙명>은 알려진 내용이 적은데, 어떤 영화인가. =네 친구의 우정과 의리, 배신을 그린 정통 누아르영화다. 내가 맡은 김우민이란 역할은 남성 편력이 심한 어머니 밑에서 불우하게 자란 친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나와 도완이란 친구를 만나게 된다. 김인권씨가 하는 역할인데, 그 친구로 인해 조직세계에 가담하게 되고 거기서 또 철중이란 친구를 만난다. 철중이는 (권)상우가 맡은 인물이다. 우민이가 조직에 가세하면서 철중이란 인물이 조직 내 세력에서 밀리게 되고, 결국 그 친구가 배신을 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감옥에 갔다 오고, 조직은 해체된다. 서로에 대한 복수와 암투가 드러나는, 캐릭터가 강한 남성영화다. 누구 한명이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5월21일이 크랭크인이다. 그전까지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 =싸움신이 좀 있어서 다음주부터 스턴트맨들과 무술 연습을 한다. 오토바이를 배우고 있고, 그 밖에 특별한 건 없는데, 담배를 피우는 신이 있어서 조금 걱정이다. 내가 3년 전에 담배를 끊었다. 이 기회를 핑계 삼아 촬영 전에 한번 피워봐야 할 것 같다.
-담배는 왜 끊었나. =2004년 4월이었다. <그놈은 멋있었다> 촬영하던 때였는데 조기축구회를 따라 나갔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아무렇지도 않고, 축구도 좀 한다고 했는데, 그때는 5분 만에 쓰러진 거다. 내 몸이 완전히 맛이 갔구나, 싶었다. 10년 정도 피우던 담밴데, 3번 시도한 끝에 끊었다.
-이번 작품 역할에 대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는 멘트가 자주 보이더라. 이번 역할을 고르는 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나. =영화로 강한 이미지에 도전해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가을동화> <여름향기>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실제로 여성 팬들은 그런 부드럽고, 한없이 착한 남자의 느낌을 원한다.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것만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군대도 갔다 왔고, 나이도 먹으면서 그런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숙명>의 김인우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인물이고. 대중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둘 다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권상우와는 절친한 친구로 알려져 있다. 이번 작품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있나. =우리는 별로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냥 잘해보자. 멋진 거 한번 찍어보자. 이 정도다. 캐릭터가 어떻고, 분석하는 진지한 스타일이 아니라. (웃음)
-오랜만의 작품이라 부담도 많을 것 같다. =3년이란 빈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도 많았다. 지금 이런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도 감사하다. 내가 군대를 시끄럽게 갔다 왔기 때문에(웃음) 이런 상황 하나하나를 감사하게 생각한다. 제대 뒤에는 과연 연기를 다시 할 수 있을까, 걱정해주시는 분도 많았다. 그래서 지금이 어떻게 보면 매우 의욕적이고, 설레지만 한편으론 두렵다. 괜히 의욕만 앞서서 힘들어하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노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공백 이후 첫 활동을 팬미팅으로 했다. 지난해 11월이었는데. =그건 내가 군대를 가면서 팬들하고 약속했던 거다. 물론 그 시점에선 팬미팅을 하지 않는 게 맞는 일이다. 시끄럽게 갔다 와서 무슨 팬미팅이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하지만 팬들한테 군대에서 나오자마자 만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런 말들은 내가 감수하겠다고 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거라면 받아들이겠다고.
-이후엔 일본에서 더 많이 활동하는 듯 보였다. =군대 가기 직전에 <가을동화>와 <여름향기>가 방영되어서 팬들이 많이 생겼다고 하더라. 군에 있는 동안에도 편지, 먹을 것 많이 보내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했다. 제대하면 꼭 찾아가겠다고 했고, 그렇게 일본에서도 팬미팅을 했다.
-팬층은 어떤가. =주로 30대, 40대, 50대다. 그나마 나는 용준이 형, 병헌이 형 등 다른 한류스타에 비해 나이가 젊은 편이라고 하더라. (웃음) 어린 건 아니고. 아무래도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층이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라 그런 것 같다.
-데뷔가 1995년 의류모델이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하던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혜화동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명함을 주시면서 모델을 구하고 있으니 연락해달라고 하더라. 하지만 그때는 전혀 연예계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명함만 받아놓고 있었다. 친구들이 그냥 아르바이트 삼아서 해보라고 했고, 가벼운 마음에 지원했다. 당구장에서 친구들과 즉석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냈다. 그런데 그게 뽑혀서 본사로 와보라고 하더라. 그때 갔더니 앞에 어떤 친구가 있는데,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는데 ‘소지섭인데요’라고 하더라. 지섭이를 그때 알았다. 그때 있었던 또 다른 친구는 원빈이었다. 그렇게 지섭이랑 일본에 가서 처음으로 카탈로그라는 걸 찍었다. 너무 신기했다. 매장에 내 사진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붙어 있는데. 일부러 밤에 혼자 나와 매장 앞에 서 있기도 하고 그랬다.
-권상우와도 모델 시절에 알고 지냈다고 하던데. =카탈로그 찍었던 브랜드가 당시 유행했던 ‘스톰’이다. 그때 상우는 거기서 피팅모델 같은 걸 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됐고, <일단 뛰어>를 하면서 친해졌다.
-이후 1년 만인 1996년에 MBC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 출연했다. =MBC PD분이 카탈로그를 보고 연락을 주셨다. 그런데 그때는 연기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대본 보고 하니까 잘됐을 리가 없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를 찍었는데 ‘그냥 너는 개만 끌고 다니면 돼, 할 것도 없어’라고 하시더라. (웃음) 공부에 관심은 없었지만 어학연수도 가고 싶었고, 제대로 된 캠퍼스 생활도 해보고 싶었지만 거기서 멈추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느낌이었다.
-그럼 연기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임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 =드라마 <가을동화>를 하면서인 것 같다. 윤석호 감독님은 연기 테크닉보다 상황에 진실된 연기를 원한다고 하시더라. 처음 대본 연습을 하면서 울었다. 대본을 읽고 있는데 저절로 눈물이 나오더라. 대본이 이상하면 감정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가을동화>는 자연스럽게 감정이 묻어났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작품을 통해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웃음과 울음을 줄 수 있다는 게 의미있는 일인 것 같았다.
-예전 인터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한 이유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집에 손 내밀기 싫어서라고 했더라. 독립심이 강한 편인가. =그렇다고 독립심이 강한 것 같진 않다. 지금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이유는 혼자 밥을 해먹을 자신이 없어서. (웃음) 단 부모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잘하는 타입은 아니다. 스톰 카탈로그도 부모님이 잡지를 보고 아셨다. 군대에 있을 때도 면회 오신다고 하면 절대 오시지 말라고 그랬다. 그냥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사립초등학교인 영훈초등학교를 나왔다. 어머니가 교육에 열성적이셨나. =어머니가 열성적인 건 아닌데, 어떻게 교복 입고 초등학교를 다니긴 했다. 당시에도 영훈초등학교라면 좋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강남에서도 온다고 하더라. 당시에도 우리는 과목별로 선생님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요즘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만나서 물어보면, ‘걔는 서울대 갔어, 얘는 고대 갔어’ 그러더라. 나만 공부를 안 한 것 같더라고. (웃음)
-공부하고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나. =중학교 때까지는 좀 한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여자친구 만나면서 열심히 안 한 것 같다. (웃음) 형이랑 많이 달라서. 형은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반장을 했다.
-보통 공부 잘하는 형이 있으면 공부에 대한 열등감을 갖기도 하던데. =또 그런 건 없었다. (웃음)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강요하진 않아서. 사춘기도 그렇게 심하게 보내진 않았고.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시더라. (웃음) 어떻게 보면 포기하신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예전 쇼프로그램에 나왔던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학창 시절에는 내성적이었다고 하더라. ‘연예계가 사람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구나’라고 하던데. =(웃음) 말도 별로 없고, 숫기가 없었다. 연기자를 하면서 조금은 외향적으로 바뀐 것 같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낯도 많이 가렸다. 이쪽 일이 모르는 사람들 만나서 작업하는 것이지 않나. 예전에는 그런 자리에 있는 게 너무 싫었다. 일을 하고 나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엔 전혀 가지 않았다. 지금도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게 가장 편하다.
-예전 인터뷰 내용 중에 인터뷰하는 것도 싫어한다는 멘트도 보이더라. =아무래도 숫기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가식적인 건 너무 싫어하는데, 이쪽 일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가식적인 면을 보여야 하는 상황들이 있다. 그래서 방송 인터뷰도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다. 내 의도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때가 있고, 그게 내 자신과 많이 부딪힌다. 하지만 요즘엔 많이 나아진 편이다.
-일본 팬미팅 때에는 마이클 잭슨 춤도 쳤더라. 처음엔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모습을 보니 또 그렇진 않더라. 혹시 천생 연예인이란 생각을 하나. =그렇진 않다. 연예인들은 이른바 끼가 많아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춤을 출 때도 매우 어색했다. 그때 귀신이 있다는 걸 느낀 것 같다. (웃음) 막상 추려고 하는데 발이 안 움직이더라. 너무 긴장을 했다. 그때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긴장을 한 때인 것 같다.
-매우 조심스럽지만, 군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군 생활은 어땠나. =어렸을 때, 철없을 때 저지른 실수고 잘못된 판단이었다. 어쨌든 내가 한 행동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고, 그래서 군대를 갔다.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변명할 수도 없다. 군대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다. 첫날부터 자고 있는데 깨워서 보초를 서라고 하더라. 그런데 이걸 2년 내내 해야 한다는 거다. 밤 10시에 취침해서 아침 6시에 일어나는데 중간에 두 시간씩 깨우는 거다, 풀(full)로 자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하는 거지만 힘들더라. 그래서 일반인들이 연예인들 군대 안 가는 것에 대해 화내는 게 이해가 됐다. 내가 막상 와서 경험하고 느끼니까, 내 판단이 잘못됐구나, 반성이 됐다.
-부대 내의 동료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겠다. =내가 76년생인데 보통이 84년생이었다. 나보다 7, 8살 어린 거다. 처음엔 정말 공황상태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나만 주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신기하겠나. TV에서 보던 사람이 자기 옆에서 자고 있으니까. 한번은 팬들이 보내온 과자를 보고 한 선임이 ‘송 이병, 이거 하나만 먹어도 돼?’라고 하더라. 그 친구가 84년생이었는데, 나보다 두달 선임이었다. 그래서 ‘예, 드세요’라고 했더니, ‘드세요? 드세요? 드십시요, 해야지’ 그러더라. 나보다 8살이 어린 친군데. 딱 거기서 ‘아,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나’ 스파크가 찌릿했다. 이게 군대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고. 여기에선 무조건 명령과 복종밖에 없으니까. 참아야 하는 게 맞지, 그냥 조용히 있다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그런 생활에 어떻게 적응했나. =처음에는 그런 부분이 많이 힘들었고, 부딪혔다. 그래서 나는 어린 친구들한테도 말을 놓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친구들도 사석에선 ‘형, 형’ 하면서 잘 따라주더라. 나이 많다고 대접받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힘들 것 같아서 그냥 편하게 지내려고 했다. 지금도 가끔 그 친구들이 생각난다.
-군 생활을 하기 전과 후, 달라진 게 있나. =아까도 말했지만 모든 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제는 정말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원래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군대에 있으면서는 책을 꽤 읽게 되었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좋은 책이든, 그렇지 않은 책이든, 무언가 하나는 남겨주더라. 요즘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책을 많이 보려고 한다.
-어느덧 30대가 되었다. =글쎄 오히려 여유가 더 생긴 느낌? 다만 이제는 애 같은 이미지를 넘어 남자다운 배우가 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노력해야겠고. 요즘엔 덴젤 워싱턴을 매우 좋아하는데 <트레이닝 데이>의 형사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매우 섬세한 감정표현이 훌륭한 배우인 것 같다. 여유를 갖고,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송승헌 남자다워졌네’라는 말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