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르와 트뤼포의 유전자를 살짝 섞어 프로이트적으로 재배치한 듯한 영화라면 짐작이 수월할까. 나치 치하 체코의 작은 기차역에 앳된 수습 역무원이 출근한다. 이 주인공은 성적 해방(아니면 그저 성적 신세계의 입문)이 꼭 필요한 젊은이 밀로스다. 오죽했으면 조루에 대한 공포로 양 손목에 면도칼을 댔을까. 이 주인공에게 사부가 되어주는 이는 성적 해방을 정치적 해방으로 승화시킨 쿨한 역무원 선배다. 성적 해방이 레지스탕스로 화하는 에너지가 되기는 밀로스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의 굳건한 동지는 구김없는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성들이다. 밀로스만큼이나 앳된 그의 여자친구도, 밀로스에게 에로스의 언어를 처음 선사하는 레지스탕스 여전사도, 성스런 독일어 문장을 엉덩짝에 꽝꽝 찍어대 권위에 찌들린 남성들을 조롱하는 역무원 여자동료도 믿어 의심치 않은 이중의미의 성(性과 聖)스러움을 지녔다.
에로틱하고 정치적인 정신분석이 펼쳐지는 기차역 에피소드와 인물 풍경은 한편으론 쿤데라의 소설투 같다. 애증이 교차하는 고국 체코의 시침을 공산주의 시대에서 나치 치하로 살짝 바꿔치기 했을 뿐 풍자와 유머와 여성을 ‘숭배’하는 카메라가 그렇다. 이 작품으로 28살의 나이에 데뷔한 체코 감독 이리 멘젤이 당시에 일약 스타가 된 건 당연해 보이는데(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까지 받았다), 그의 작품이 이제야 이곳에 당도한 건 미스터리처럼 보인다(마흔살 연하의 아리따운 아내와 올해의 전주영화제에 나타난 건 그래서 더욱 반갑지만). 1966년에 만들어졌지만 그 생기는 지금도 풋풋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