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남자> 시사회 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귄터 그라스(왼쪽.)
지난 4월15일 여성감독 지그룬 마티젠과 나디아 프렌츠가 2년을 고스란히 바쳐 만들었다는 <양철북>의 저자인 귄터 그라스의 다큐영화 <불편한 남자>(Der Unbequeme)의 시사가 있었다. 그라스는 나치로 상징되는 아버지 세대를 부정해왔다. 그리고 진보정당 사민당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보수파에는 대단히 ‘불편한’ 남자이기도 하지만 지난해 신작 <양파껍질을 벗기며>의 발간과 동시에 나치 친위대에 근무했다는 전력이 알려지면서 독일 문학의 양심을 대변한다던 그 역시 표리부동한 인물이었다는 비난을 받는 등 생애 최대의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생존 인물, 그것도 거물을 주인공으로 다큐를 만들면서 ‘양파껍질을 벗기듯’속을 까발리기가 쉬운 일인가! 그래서인지 그라스의 책을 몽땅 챙겨 읽고 100시간이 넘는 촬영분량과 씨름했다는 두 감독은 카메라 뒤에 얌전히 숨어 스캔들에 대한 언급 한마디 없다. 그 앞에서 그라스는 글을 쓰다가, 출판사 사장과 미팅을 하다가, 강독회에서 독자들을 만나다가, 시간이 남으면 신작 표지용 판화 작업을 하다가(그는 미대 출신이다), 그러다가 정말로 할 일이 없으면 도자기를 빚는다. 그라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장인물들은 비서, 절친한 친구, 출판사 사장, 딸, 동료작가 등 ‘친그라스파’뿐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고나면 독일사회의 대표적 ‘불편한 남자’도 알고 보니 참 부드러운 남자였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어지는데, 잠깐! 다큐영화의 위험성에 직면한 순간이다. 감독의 적극적/소극적 개입 여부를 떠나 선택된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과 착각을 초래할 수 있는가를 재차 확인해 보는 순간 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 두 감독은 올 10월15일 80살 생일을 맞는 위대한 작가 귄터 그라스에게 아름다운 헌정시를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