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2주년 기념호를 읽은 독자 한분의 이메일을 받았다. 황은하라는 이름의 독자는 전주영화제에 갈 수 없는 설움과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사서 봤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호는 솔직히 영화제에 대한 위로 이상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잡지를 읽으면서도 도무지 불안하지 않았으며 늘어진 (영화에 대한) 애티튜드의 나사를, 헨리 제임스의 소설 제목처럼 회전시켜 조일 수 있었죠. 정윤철 감독이 만든 세 가지 특급 요리가 즐거웠습니다. 다시 영화가 하나의 특권으로 제게 배달될 것만 같습니다. 정확히 무엇이 현을 건드렸는지는 딱 짚어 말하지는 못하겠네요. 박신양씨처럼 도덕시간에 졸아 감사를 전할 수는 없고 대신 시를 씁니다.” 황은하씨는 <나쁜 교육> <별점에 대하여> <떨림에 대하여>라는 세편의 시를 선물로 보내왔다. 지면에 다 싣긴 힘들지만 마음에 와닿았던 <별점에 대하여>라는 시의 한 대목을 인용해본다.
만약 어떤 영화를 보고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싶지 않다면 별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영화를 보고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성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건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 영화는 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쁜 영화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영화에는 별이 없어야 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별은 우리를 먼 곳으로 인도하며 죽음과 삶의 등불이 되어줍니다. 어느 순간 별점평가를 믿지 않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반대로 사고하게 되었답니다. 그 영화를 보고 그 사람은 두개의 별이 되었구나. 그 영화를 보고 그 사람은 네개의 별이 되었구나. 어떤 사람은 별을 더이상….
평론가는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람입니다. 그의 숭고한 이마를 우리는 사랑합니다. 그도 별입니다.
평론가 3인을 인터뷰한 특집기사에 어울리는 축시가 아닐까 싶어 옮겨봤다. 황은하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창간 기념호를 내놓자마자 “한국 영화산업 무너지나”라는 우울한 제목의 특집을 내놓는 마음이 편치 않다. 많은 영화계 종사자들이 전에 없던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는 걸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국영화가 언제 위기 아닌 적이 있나 싶긴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더이상 성장의 동력이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쥐어짜고 있지만 시장이 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한 이상 과거의 고속성장을 재연할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은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과 비슷한 면도 있다. 누군가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통치자가 나온다면 잘 먹고 잘살게 해줄 거라 기대하지만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도 70년대에나 가능했던 얘기다. 그 시절의 향수에 취해 내놓는 장밋빛 약속은 환상일 가능성이 크다. 영화산업의 미래도 다시 천만 관객이 드는 영화들이 나온다고 밝아질 것 같지 않다. 그걸 인정하고 저성장 산업이 가늘고 길게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