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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의 총망라 <스파이더맨 3>
김혜리 2007-05-02

탕아 스파이더 맨, 용서하지 못하면 강자가 아님을 깨닫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온다. <스파이더맨 3>의 도입부에서 피터 파커/스파이더 맨(토비 맥과이어)의 인생은 만사형통 운수대통이다. 이제 영웅의 업무를 완전히 파악한 스파이더 맨은 뉴욕을 안전한 도시로 만들었다. 활강하는 기교에도 노련미가 흐른다. 맨해튼 노점에서 캐릭터 상품이 팔릴 만큼 시민들의 총애도 받고 있다. 2편 결말부에서 “널 구해줄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니?”라고 속삭여준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과의 사랑도 달콤하기 그지없다. 피자 배달하다 해고되는가 하면, 쫄쫄이 입고 엘리베이터 탔다가 민망해지는 2편의 전반부와 정반대다. 잘나가는 피터 파커의 모습이라니 흐뭇하지만, 자전거 타는 곰처럼 어색하다. 부정적인 당신은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아아, 남은 것은 내리막뿐이겠군.” 과연 피터 파커가 3편에서 겪는 환란은 양도 종류도 전편들과 비교불가다.

<스파이더 맨>(2002)은 개봉 주말 흥행(전미) 1억달러를 처음 넘어선 대박 블록버스터이기도 했지만 할리우드 청춘영화가 오랜만에 배출한 명작이기도 했다. 스토리와 캐릭터의 짜임새는 <스파이더 맨> 프랜차이즈의 심장이다. 자연히 <스파이더 맨> 연작만큼 이야기의 연속성에 집착하는 슈퍼히어로물은 달리 찾기 어렵다. 만화(2편)나 영상(3편)으로 ‘지난 이야기’를 고스란히 복습하게 만드는 오프닝 크레딧만 봐도 알 수 있다. 샘 레이미와 작가들이 잡은 3편의 포지션은 적절하다. 성인의 문턱을 막 넘은 남자아이가 감정의 허기와 성취 욕구를 채우고 났을 때 찾아올 위협은 무엇일까? 독선과 교만, 불관용이다. <스파이더맨 3>의 스크린 뒤 대기실은 북적거린다. 피터 파커가 사생결단을 내야 할 적이 셋, 원수인지 동지인지 헷갈리는 친구가 하나, 영원히 사랑하는 여자 하나에 잠깐 사귀는 여자 하나, 일자리를 가로채려는 비열한 경쟁자가 하나다. 이야기는 팔방으로 그물을 짠다. 1편에서 피터가 추락사하도록 방치한 강도가 숙부의 살해범이 아니라는 통보가 날아오고 피터는 다시 복수심에 불탄다. 문제의 진범 플린트 마르코(토머스 헤이든 처치)는 탈옥했다가, 실험장치에 잘못 떨어져 막대한 힘과 변형력을 가진 샌드맨으로 변한다.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 딸이 있는 그는 현금탈취에 나선다. <데일리 버글> 신문사에는 영악한 라이벌 사진기자 에디 브록이 피터를 밀어내려고 일을 꾸미고, 피터를 아버지의 원수라 여기는 옛 친구 해리(제임스 프랑코)는 그린 고블린 2세가 된다. 하지만 결정타는 명성에 취한 피터의 자기중심주의에 메리 제인과의 불화다. 마음에 어둠을 키운 피터는, 파괴욕을 자극하는 검은 외계 물질에 ‘감염’되어 탈선한다.

로맨스, F/X 스펙터클, 참신한 액션, 미군의 이라크 철수를 종용하는 듯한 은유법 등 여러 장의 접시를 돌리며 나아가다보니 <스파이더맨 3>의 전개는 전편들에 비해 추진력이 떨어진다. 피터에게 ‘대리 아버지’였다가 악당으로 추락하는 전편의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토퍼스에 비해 악당의 성격과 난데없는 외계 물질의 등장도 심심하다. 심지어 스파이더 맨도 싸우다 말고 외친다. “이런 애들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거야?” 그러나 쾌감의 가짓수로 볼 때 <스파이더맨 3>는 경쟁하기 어려운 엔터테인먼트다. 마천루 틈새의 추격전, 거대한 크레인이 건물을 두부처럼 썰어대는 재난, 지하철 선로 결투, 클라이맥스의 태그매치 등 예닐곱개의 액션신은 대도시를 배경으로 상상할 수 있는 액션의 총망라다. 캐릭터의 특성에 따라 <스파이더 맨>의 스펙터클은 단단한 덩어리끼리의 충돌이 아니라 끈끈하고 유동적인 엉킴이다. 로맨스를 찾는 관객이라면, 거미줄 해먹에서 별을 보다가 타잔과 제인처럼 착지하는 피터와 메리 제인 커플의 모습에 환성을 지를 것이다. 벽을 타는 스파이더 맨의 자태가 섹시하다고 느끼는 남녀가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3편의 피터는 능력을 남용해 재즈 클럽에서 춤판을 벌이기도 한다. 단골 카메오 브루스 캠벨은 1, 2편에 비해 훨씬 인상에 남는 장면에서 코미디를 주도한다. 반면 메이 숙모(로즈메리 헤이스)와 메리 제인은 1, 2편만큼 아름답고 설득력있는 연기를 벌일 기회를 얻지 못하고 메리 제인의 질투를 자극하는 그웬 역의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는 후일을 기약하듯 살짝 모습만 보이고 돌아나간다.

흔히 1990년대 이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혁신 비결을 예술영화감독의 영입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브라이언 싱어, 피터 잭슨 그리고 샘 레이미처럼 판타지 원작의 세부와 영혼을 같이 이해하는 ‘팬 보이’들의 열정이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스파이더맨 3>는 1편이나 2편의 마술적 순간을 만들진 못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샘 레이미는 동지 팬들에게 부끄럽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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