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영화극장(NFT)이 그간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BFI 사우스뱅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이번 꽃단장은 9천만파운드의 예산을 들여 퀸 엘리자베스 홀, 헤이워드 갤러리, 국립극장 등 인근의 복합 예술단지를 재정비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국립’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간판에서 떼어내면서 ‘사우스뱅크’라는 지역적 성격을 강화한 점은 그간 별다른 국가지원 없이도 착실히 성과를 이루어낸 템스강 북쪽의 바비칸센터에 대한 템스강 남쪽의 대응이기도 하다. 새로운 간판에 어울리도록 워털루 다리 그늘 밑으로 향해 있던 출입구도 위치를 바꾸어 현대식 유리 건축물로 외양을 달리하면서 ‘열린 공간’임을 한껏 뽐내고자 했다. 내부 또한 상당한 변화를 맞이했다. 기존에 있던 세개의 상영관을 비롯해 아카이브 열람이 가능한 미디어테크, 미술가들이 만든 영화의 상영 및 멀티미디어 작품 전시를 위한 갤러리, 스튜디오, 프로젝트 공간 등을 갖춤으로써 디지털에 의해 변화한 영화의 면모를 적극적으로 껴안고자 한 인상이다.
이러한 하드웨어적 변신에 조응하듯 개관 첫 메인 행사는 비주얼뮤직영화제인 ‘옵트로니카’로 꾸려졌고, 영화제의 핵심 프로그램은 BFI가 꾸준히 지원해온 스타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에 맞춰졌다. 이미 ‘우리가 알던 영화의 종언’을 선언했던 그는 영화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영화적 전망을 펼쳐 보이고자 한 야심작 <털스 루퍼의 여행가방>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멀티미디어 3부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3회에 걸쳐 순차적으로 상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BFI 아이맥스 극장에서 그리너웨이 자신이 직접 터치스크린을 조작하면서 실시간으로 재조합해서 상영하는 식으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리너웨이의 미래적 전망은 LA에 위치한 비주얼뮤직센터의 담당자 신디 키퍼가 소개한 ‘컬러 오르간의 역사’라는 회고전과도 대구를 이루었다. 영화 발명 이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시도된 컬러 오르간의 여러 면모 중에서도 영국 상영관에서 처음 선보인 오스카 피싱어의 멀티스크린 작품 <R-1>은 80년 전에 이미 그리너웨이의 실험을 예고한 듯했고,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이중주가 만난 리모델링 공간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부각했다.
이런 변신을 통해 그간 NFT의 운영 주체인 BFI가 보여준 ‘안전제일 우선’의 소극적인 태도가 얼마나 극복됐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하지만 미디어테크에서 열람 가능한 아카이브의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매달 테마를 달리하여 아카이브를 제공하는 지금의 운영방식은 이전과는 달라진 새로운 유연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