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의 열네 번째 영화 <숨>은 인간의 복잡한 욕망의 뒤얽힘을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호흡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는 증오와 사랑, 이해와 미움, 사랑과 질투를 ‘들숨과 날숨’에 비유하면서 어쩌면 양극단에 있는 듯이 보이는 그런 감정들이 하나로 섞여 경계가 사라지는 상태를 꿈꾼다. 이 ‘꿈’은 아마도 현실에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는 영화 안에서 점차 현실이라는 테두리를 지워나면서 그 꿈이 실현 가능한 지점들을 발견해나가는 듯하다.
김기덕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 중 하나는 ‘아이러니’다. 그는 언제나 가장 낮고, 더럽고, 천한 곳에서 가장 숭고하고 순수하며 고귀한 가치들을 찾아낸다. 또 가장 강력한 권력과 폭력의 중심 속에 존재하는 텅 빈 공간들을 포착해낸다. 그것은 창녀를 성녀로 만드는 상투적인 플롯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직선적인 시간 개념을 ‘활’처럼 휘어버리거나 뫼비우스 띠처럼 꼬아놓음으로써 보편과 상식으로 점철된 시공간을 훌쩍 넘어서기도 한다. 이번 영화 <숨>에서도 그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형수 장진(장첸)을 통해 삶을 향한 욕망이 갖고 있는 역설을 포착한다. 또한 사랑하기에 서로 더 깊은 상처만 주는 연(박지아)과 남편의 관계를 통해 사랑과 증오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그리며 이해와 용서라는 해(解)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맞는 겨울이 과연 진정한 화해로 해석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감독은 언제나처럼 확정 불가능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결말을 남겨놓는다.
장진에게 남겨진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을 담는다. 그들은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지만 한 공간 안의 이들보다 더 많이 소통하고, 서로의 들숨과 날숨이 된다. 이전에는 ‘빈 집’이었던 장진의 감방과 연의 큰 집은 그들의 존재론적 위치가 변함에 따라 다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동일 모티브의 반복 혹은 변주 그리고 일관된 주제의식으로 인해 전작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나 연과 장진의 만남을 지켜보는 카메라 뒤편에 자리잡은 자신을 보여주는 것에서 한결 유연해지고, 여유로워진 감독의 자신감이 확인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화가 더 많은 관객의 숨결 속으로 스며들어 그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읽힌다. 그의 다음 ‘날숨’에 힘을 실어줄 <숨>을 향한 관객의 적극적인 ‘들숨’이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