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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느낌의 불륜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소심한 남자와 뻔뻔한 사내의 공수교대

이 방면의 대가는 물론 홍상수 감독이다. 남자와 여자, 침대와 술이라는 4원소로 욕망과 욕망이 밀고 당기며 얽히고 바스러지는 풍경을 그려내는 데 있어서 그를 능가할 감독이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이야기는 언뜻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김태식 감독은 착점을 전혀 다른 곳에 놓았다. 홍상수 감독이 욕망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쩔쩔매는 지식인의 위선적 태도를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류학자 같다면, 김태식 감독은 오랜만에 만난 고교 동창의 객쩍은 고백을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들어주는 친구 같다. 눈을 맞추면서 열심히 들어주다가도 가끔씩 귓가로 흘려듣기도 하는 친구.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주인공은 강원도에서 도장 파는 일로 살아가는 태한(박광정)이다. 아내가 택시 기사인 중식(정보석)과 불륜 관계인 것을 알아챈 태한은 손님인 척 가장해 중식의 택시에 올라탄 뒤 강원도 낙산까지 장거리를 가자고 한다. 택시가 고장을 일으키고, 갖가지 해프닝이 일어난 끝에 태한의 정체를 모르는 중식은 그를 내려놓고 태한의 아내를 만나러 간다. 아내와 중식의 결정적 장면을 목격한 태한은 홀로 서울로 간다. 중식의 아내 소옥(조은지)을 한번 만나보기 위해서.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남자와 뻔뻔하기 짝이 없는 사내의 오월동주(吳越同舟). 그러나 이 영화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치정이 빚어낼 파국이 아니다.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네 인물 중 오직 태한의 아내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불륜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과 어떻게 다른지 말해준다. 적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과 라이벌에 대한 경쟁심, 육체적으로 우월한 수컷에 대한 열등감과 짝을 빼앗긴 자들끼리의 본능적 유대감 같은 것이 이야기의 표면을 슬쩍슬쩍 스쳐가면서 흥미로운 풍경들을 빚어낸다. ‘무게에의 강박’에 짓눌리지 않은 독립영화를 만나는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인물들을 깔아뭉개지도 않고 그렇다고 떠받들지도 않으면서 감독은 썰렁한 듯 심심한 듯 개성 넘치는 유머와 리듬으로 극에 싱싱한 탄력을 불어넣었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에서 극단적인 롱숏 사이를 자주 오가는 이 영화의 카메라가 늘 효과적인 것은 아니지만, 표현욕구가 왕성한 시선은 이 영화에 지치지 않는 동력을 제공했다. 수백개의 수박이 언덕 아래로 굴러가고, 날아오르는 헬리콥터의 바람이 소변 방울을 부수는 시퀀스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결정지은 또 다른 축이다.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다 좋지만,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심한 남자를 탁월하게 그려낸 박광정의 연기는 큰 박수를 받을 만하다.

어쩌면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핵심은 ‘삶에 뚫린 거대한 구멍을 확인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전전긍긍하는 무기력한 인간의 초상’인지도 모른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수교대하고, 넉살 좋은 인간과 쭈뼛거리는 인간이 결국엔 별 차이가 없게 되는 상황 속에서, 감독은 치정의 폭풍 그 자체보다는 한바탕 바람이 휘몰아친 뒤에 남은 치정의 부스러기를 오래오래 쳐다본다. 극중 두 차례 멀뚱거리며 등장하는 수탉의 모습이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가장 중요한 이미지라면, 태한이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야, 넌 그렇게 할 말이 많냐? 지랄하네. 나도 할 말 많은 사람이야”라고 혼자 구시렁대는 대사는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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