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일 휴일, 4대보험 가입, 8시간 근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 ‘1.4.8’이 의미하는 바다. 지난해 6월27일부터 올해 4월12일까지 약 10개월간 영화노조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는 19차례 단체교섭과 10차례 실무교섭을 거쳐 2007 영화산업 임금 및 단체협약 합의안을 타결했다. “기본법을 만들 듯 모든 것을 처음부터 규정하는 작업이었다.” 차승재 제협 회장의 말은 지난한 협상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는다. 과연, 영화계 노사협상의 최대 쟁점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10개월 동안 양쪽은 무슨 이유로 정회를 거듭하며 마라톤 회의를 계속했던 것일까. 오는 7월1일부터 노사협약이 적용될 경우, 촬영현장은 어떤 변화에 휩싸이게 될 것인가.
영화노조와 제협간의 단체교섭이 첫 번째 좌초 위기를 맞았던 건 시급과 관련한 임금협상 때였다. 2006년 12월5일 13차 협상. 양쪽은 원활한 협상 진행을 위해 실무 소위원회를 만들었으나, 1만원의 격차를 줄이려고 무려 3개월 동안 진땀을 흘렸다. 영화노조는 촬영 1조수의 시급에 대해 1만8천원을, 제협은 8700원을 제시했다. “정확한 시급을 계산하는 기준이 상당히 애매했다. 10시간을 일하든 30시간을 일하든 회차 개념으로 일하던 사람들에게 시급에 대한 개념을 적용해서 금액을 산출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영화노조 이진환 사무처장의 말이다. 제협의 어려움 또한 다르지 않았다. 양쪽 모두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샘플링한 영화들이 서로 달랐고, 촬영부 퍼스트가 받는 통상적인 임금 수준에 대한 입장 또한 이견을 보였다.
시급 1만1천원, 4대보험 가입, 유급휴가 보장
협상을 계속한 끝에 영화노조와 제협은 1만1천원의 시급에 합의했다. 양쪽 모두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최하급 스탭들의 임금은 과거보다 큰 폭으로 오르게 됐다. 예를 들어 1일 12시간 근로에 4시간을 야근근로로 칠 경우, 촬영(조명)부 막내와 연출(제작)부 막내는 각각 142만8천원과 161만2800원의 월급을 보장받는다. 최진욱 노조위원장은 “막내들의 임금 인상폭이 50% 정도 된다”면서 “이것이 그동안 불합리했던 처우를 방증하고 있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시급 기준이 정해짐에 따라, 각 스탭들은 제작사와의 개별 계약 협상 과정에서 기준 임금 이상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진환 노조 사무처장은 “직급 조건에 부합됐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촬영현장에서 요구되는 숙련도 문제는 스탭 개인들이 확보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교섭 과정에서 또 하나의 쟁점이 됐던 사안은 저예산영화 예외 규정이었다. 저예산영화의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것부터 양쪽은 첨예하게 맞섰다. 제협쪽은 “한국영화 평균 순제작비가 35억원에서 40억원 사이”임을 고려해서 저예산영화를 15억원 미만 영화로 정하자고 한 반면, 노조쪽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정한 대로 “10억원 미만 영화”로 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저예산영화는 순제작비 10억원 미만의 영화로 정의됐고, 저예산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스탭들은 협약에 명시된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게 됐다. 이진환 영화노조 사무처장은 “(저예산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스탭들도 상업영화만큼 동일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원칙”이었으나, 예산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저예산영화 제작이 위축될 것이 우려되어 한발 물러섰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노조쪽은 저예산영화라는 이유로 스탭들이 불합리한 처우를 감수하는 상황은 어떻게든 막아낼 계획이다. 최진욱 영화노조 위원장은 “어떤 상황에서든 근로기준법은 지켜져야 한다”며 “저예산영화라고 할지라도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소임금 확보를 위해 노조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예외 조항을 이유로 들어, 제작사가 스탭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에는 문제삼겠다는 것이다. 한편, 제협과 영화노조가 마지막까지 줄다리기를 벌였던 특수목적 사업장의 임금 지급건과 관련해, “일부 공포영화들처럼 야간 촬영시간이 전체 촬영시간의 50%를 넘게 되는 특수목적 사업장에 한해 미지급된 야근수당은 해당 영화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전환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이 밖에 이번 노사협약에서는 4대보험 가입 등 스탭들의 복리후생을 위한 조항들도 포함됐다. 주 1일 휴일, 각종 유급휴가, 모성보호제도(생리휴가, 출산휴가 등) 등을 보장하는 이번 임·단협안이 충무로 제작 시스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일각에선 제작비 상승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최진욱 영화노조 위원장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누수를 줄일 수 있는 기회”라며 “이러한 노력이 시스템으로 굳어질 경우 제작비는 외려 낮아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임금 및 노동시간의 계량화로 인해 지금까지 방만하게 운영되어왔던 촬영현장이 개선된다는 것이다. 장동찬 제협 사무처장도 “전문 조감독이 생기고, 프로듀서의 권한도 굉장히 강화될 것이다. 시간을 규모있게 사용하면 인건비는 오히려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4월18일 서울 영진위 소회의실에서 열린 '2007 영화산업 단체협약' 조인식 현장
“5% 정도의 제작비 상승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차승재 제협 회장은 “1년에 70~80편이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노사협약 적용으로 인해 전체 한국영화 제작비는 120억원 정도 증가할 것이다. 이는 적은 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순제작비 30억원의 예산에 촬영기간 15주를 잡았을 때의 경우이며, 실제로 협의안이 발효되면 평균 촬영기간이 12주 정도로 줄어들 것이고 이에 따라 제작비 또한 상당부분 절감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도 “지금보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현장의 합리화를 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부분의 변화만으로도 5%의 제작비 상승분은 상쇄하고도 남을 것 같다. 결국 프로덕션 퀄리티가 높아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노조 차원의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영화계 안팎의 기대가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추가 노력들이 필요하다. 이진환 노조 사무처장은 “스탭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도록 노조 차원에서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제협 역시 현장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체계적인 스케줄링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영진위도 “스탭들의 4대보험 가입”을 돕기 위해 제작사를 대신해 스탭들의 정보를 정리할 위탁관리사를 선정하고, 그 비용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영진위 안정숙 위원장은 “내부적으로는 합의가 있었으나 영화 스탭들은 일반적인 고용형태가 아니라서 관계부처를 설득하는 것이 어렵긴 하다”면서 “영진위가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노사가 맺은 결실이 실행에 옮겨지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막중한 책임감을 표시했다.
갈 길은 더욱 멀지도 모른다. 이번 협의안에 명시되지 않은 연출, 제작 파트의 직급 인정기준 마련, 미술, 분장 등 남은 파트들의 임금협상 등은 노사의 다음 협상 과제로 남았다. 비위임사들을 상대로 개별 교섭을 벌이는 것도 앞으로 노조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노조-제협간 임단협안 타결은 한국 영화사에 한획을 그은 순간으로 두고두고 평가될 것이다. 스탭들의 처우 개선과 제작방식의 합리화. 크고 요원하게만 느껴졌던 한국 영화계의 오랜 숙제가 일단 해결의 물꼬를 텄다. 그 양 물줄기가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상생의 기운으로 뭉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임금 및 단체협약 합의안 주요 내용
1. 시급
촬영·조명부의 직급별 최저임금안 직급/금액 1st/11,000원 2nd/7,000원 3rd /5,000원 4th/3,720원 수습/3,480원
연출·제작부의 직급별 최저임금안 직급/금액 1st/8,600원 2nd/6,300원 3rd/4,200원 수습/3,480원 스크립터/2nd와 3rd 사이에 적용
*촬영·조명부 직급 가이드라인(둘 중 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직급 인정) -1st: 8작품 이상 또는 400회차 이상/ 2nd로서 2작품 이상 또는 100회차 이상 -2nd: 6작품 이상 또는 300회차 이상/ 3rd로서 3작품 이상 또는 150회차 이상 -3rd: 3작품 이상 또는 150회차 이상/ 4th로서 2작품 이상 또는 100회차 이상 -4th: 작품경력 3개월을 넘은 자/ 50회차 수습기간을 거친 자 *연출·제작부 직급 가이드라인 미확정
-직급은 해당 노조원의 전(前) 작품의 직급을 기준으로 함.
-수습기간은 최초로 고용된 작품에 한함(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를 거친 극영화).
-최초 고용 작품 안에서 수습기간이 6개월을 초과하는 경우, 위임사는 익일부터 차상위 직급의 최저시간급을 지급해야 함.
-근로시간이 40시간에 미달하거나 촬영이 이루어지지 못한 주에도 위임사는 노조원의 해당시간급에 48을 곱한 금액 이상의 주급액을 보장해야 함.
2. 노동시간 및 시간 외 근로수당
-1일 근로시간은 12시간으로 하되, 1일 총근로시간이 15시간을 초과하거나 1주 총근로시간이 66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개별 노사합의하에 연장할 수 있음.
-시간 외 근로수당(%는 통상시간급에 대한 백분율임): 연장근로(1일8시간 이상 근로)시 50% 가산 지급, 야간근로(22시~6시)시 50% 가산 지급, 휴일근로시 50% 가산지급(단 8시간 초과근로 부분에 대해서는 100% 가산지급), 이상 항목들의 가산 수당은 발생사유마다 할증 계산됨.
-미사용 연월차휴가근로수당(통상시간급X8시간X근로일) 지급
-근로시간 포함: 원거리 로케이션으로 인한 이동시간, 촬영 준비·정리·대기·이동시간, 기타 위임사의 지휘하에서 근로를 제공한 시간.
-유급휴일: 주휴일(노사 합의하에 1주마다 정기 부여), 추석 3일, 설날 3일, 노동절(5월1일), 노조창립기념일(12월15일), 기타 노사가 합의한 날
3. 기타 사항
-저예산영화 예외규정: 순제작비 10억원 미만의 영화제작의 경우 최저임금안 적용을 배제함.
-미지급임금 투자적용: 야간수당 발생시간이 50% 이상인 영화의 경우 개별노사간 합의를 통해 미지급된 야간수당을 해당 영화에 대한 수익배분제로 돌릴 수 있음.
-노조 활동 보장 및 지원: 위임사는 노조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며, 위임사별로 작품당 기금을 촬영 시작 전까지 노조에 지원함. 10억 이상 20억 미만: 40만원 20억 이상 30억 미만: 60만원 30억 이상 40억 미만: 80만원 40억 이상 50억 미만: 100만원 50억 이상: 12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