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렇지. 씨네리 창간 600호 지면 개편 소식을 듣고 이번만큼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참극을 접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마감 시간까지 사실 파악에도 급급해 기왕의 의식도 제대로 안 흘러간다.
대량살인은 살인으로 쾌감을 얻는 연쇄살인이나 자기 도취적 명분을 내거는 자살테러와 달리,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모두 죽자는 파괴적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대량살인자 자신도 거의 자살하므로 이유도 알 수 없다. 주범인 조승희씨가 미국 <NBC> 보낸 ‘성명서’는 횡설수설했다. 부유층에 대한 증오심을 토하며 순교자 흉내를 냈지만 제대로 자기 행위를 설명 못하는 상태였다.
특별한 자원 없이 이민간 그의 가족은 먹고사는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 생존’에 허덕였을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나 유학생들과 달리 조씨처럼 어느 날 미국 땅에 ‘꺾꽂이’된 이민 1.5세대들은 정체성 혼란을 많이 겪는다. 게다가 개천에서 용 나기가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미국에서 유명대를 주름잡는 이들은 주말에 원정 스키여행을 갈 수 있는 이들이다(직장 그만두고 빚내어 미국 유명대 MBA 과정에 다녔던 한 친구는 연봉 얼마짜리 미국 회사를 삶의 목표로 삼고 틈틈이 백인 중산층 동네를 구경하며 꿈을 키웠는데, 어느 날 주말마다 고물차를 타고 출몰하는 그를 누군가가 신고해 경찰조사를 받은 뒤로는 개구리가 울어대듯 ‘부모 잘 만나 돈지랄하는 놈들’을 욕하는 메일을 보내오더니 결국 공부 마치고 한국에 와 다니던 직장의 방계 회사에 어렵게 재취업해 벌이의 상당부분을 빚 갚는 데 쓴다).
이번 사건에 한-미동맹과 대미경제를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자동으로 나오는 ‘그 안보와 경제’다. 정부 일각에서는 미국 국무부에 조문단을 보내겠다는 의사를 타진했다가 “니들이 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순혈주의의 발로라기보다는 알아서 기는(혹은 오버하는) 형국이다. 공포 속에서 살아온 자는 뭐든 힘있는 것에 빌붙는 경향이 있다. 조씨에게 힘은 아마도 총이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총기보유 주창자들은 버지니아 공대가 캠퍼스 내 총기 휴대를 금지해서 희생자들이 더 많이 생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공포는 중독된다는 게 더 공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