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스> 모히로 기토 지음/대원씨아이 펴냄
중학생이 된 해의 여름방학, 어촌마을의 자연학교에서 만난 열다섯명의 아이들은 우연히 지구를 지키는 ‘게임’에 참여하는 계약을 하게 된다. 로봇을 조종해서 지구를 습격하는 15대의 적을 물리치는 것. 그리고 첫 번째 전투에서 아이들이 알게 된 것은, 전투가 끝나면 파일럿도 죽는다는 사실. 이 로봇은 파일럿의 생체 에너지를 동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지키고 죽을 것인가 아니면 지구가 멸망한 뒤 모두 함께 죽을 것인가. 너무도 가혹한 선택이다. 50억 인구를 지키기 위해 한 아이의 죽음, 아니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의) 피해자까지 합한 수만명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나의 생명은 나머지 생명들을 위해 희생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지어스>는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진짜로 <지어스>에서 마음 쓰는 장면들은 이런 거창한 명제들이 아닌, 이제 겨우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어선 아이들이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들이다. 집나간 아빠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던 다이이치는 마지막 순간에도 어리지만 진한 부성(父性)을 드러내고, 엄마가 매춘부라는 사실에 오히려 강박적으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카나는 강박을 벗고 홀가분하게 ‘임무’를 마친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 앞에서조차 한 발짝 성장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뒤로 한발 물러서는 아이도 있다. 이지메를 당하면서 한번 제대로 대들어보지도 못하던 카코는 전투에서도 도망만 치고, 짝사랑하던 선생님에게 배신당하고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던 치즈루는 마지막 순간 ‘지어스’의 힘을 이용해 복수를 한다. 담담한 그림체로 들려주는 <지어스>의 모범적인 결말과 혼돈 속에서 방황하는 결말은, 잔혹한 일들이 너무도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판타지라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