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극장 ‘간판쟁이’ 출신 무명 화가들이 유명 화가의 그림을 베껴 그렸는데 저명 심사위원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일이 있었다. 성매매 범죄도 그러하지만 이 경우도 중간 알선·판매자가 문제였다. 돈 몇푼 주고 베끼게 해서는 다른 데다 비싸게 팔았다. 이자를 포함해 그중 많이 그린 화가는 구속됐다. ‘명품의 아우라’란 실은 허망하다는 걸 새삼 일깨워준 면도 있으나, 때가 때인지라 단순 위작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실력이 좋았을(그러니까 감쪽같았지) 그 간판 화가도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면 유명 화가가 될 수 있었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로 반대자들의 ‘급지지’를 받게 된 대통령이 입만 열면 경쟁력을 기르라고 국민을 다그친다. 백인이 흑인에게, 귀족이 노예에게, 제국이 식민지에게,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어른이 아이에게, 모든 주류가 비주류에게 끊임없이 강조해온 “너만 잘하면 돼” 논리다. 간판쟁이가 밤마다 창작열을 불태웠다면 밥벌이 보전도 어려웠을 것이다. 양극화는 이래서 무섭다. 급격한 외부환경 변화에 배부르고 등따신 사람들은 충격이 적다. 관세를 없애 가격경쟁을 붙이는 게 ‘자유무역’이다. 중소(하청)업체, 소규모 농가, 비정규 노동자로 갈수록 단가하락이나 구조조정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부는 첨단제품과 기술이 수입되므로 노동집약·취약산업은 피해가 적다고 ‘막연히’ 주장한다. 총리가 나서 양극화는 미국이 걱정할 문제라고 단언한다.
그래놓고는 정부 산하기관과 단체, 기업까지 동원해 지지성명을 내도록 ‘작전’했다. 전문가 기고를 언론사와 날짜까지 박아 ‘추진’했다. 반대하는 시민단체에는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지침’했고 일부는 ‘실행’했다(이건 거의 헛짓인데 반대 운동에 열심인 단체 중에서 내가 알기론 정부 지원에 목매는 곳은 한곳도 없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과 전두환의 보도지침을 섞은 여론몰이다. 오죽 자기 정책에 자신이 없으면 이럴까. 오렌지와 경쟁해야 할 제주 감귤보다 미국 투자자한테 제소당할 수 있게 되는 우리 정부의 경쟁력이 더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