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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 슬픈 영화 <천년학>

깊게 갇힌 우물을 바다처럼 넓고 역동치게 터놓은 손길.

송화(오정해)와 동호(조재현)가 어렵게 재회한 곳이 백사 노인의 칠순잔칫집이다. 송화는 님과의 이별을 아파하는 소리로 심금을 울리지만, 서릿발 같은 조 명창에게 ‘모욕’당한다. 소리를 내면서도 그 소리의 뜻과 법을 모르니 한심하다는 것이다. 상전(뽕나무밭)이 벽해(푸른 바다)로 바뀌는 긴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간절하게 드러냈지만, 송화는 상전의 뜻을 몰라 ‘쌍전’으로 소리냈던 터였다. 송화를 감싸준 건 동호가 아니라 주인장 백사 노인이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나 듣기 좋으면 그만이지.”

예술의 생명은 법도로 따질 게 아니라 그 값어치를 매겨줄 손님의 손에 달리긴 했다. 그런데 백사 노인은 소리만 품은 게 아니라 송화의 몸뚱이까지 안았다. 친일의 대가로 해방 뒤에도 호사를 누리는 노인은 고운 송화의 소리에 감싸여, 눈처럼 휘날리는 희디흰 꽃송이들의 환송을 받으며 세상을 뜬다. <천년학>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이다. <천년학>은 그렇게 아름다워 슬프다. 미를 만들어내는 자의 운명 같은 슬픔이 또다시 미를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피워낸다. 제주도 4·3 항쟁의 딸이 식민의 반역자에게 듬뿍 사랑을 받는 대신 스승 같은 아버지로 인해 눈이 멀고, 사랑하는 남자를 평생 동생으로 대하며, 동생을 고수로 키워준 어른은 무식하다고 그녀를 삿대질한다.

무시로 넘나드는 소리 역시 아름다워 슬프다. 송화의 <춘향가>는 동호와 끊어질 듯 이어가는 사랑을 곡진하게 전하며, 송화의 <심청가>는 아비로 위장한 사내 유봉(임진택)의 욕정인지 아비의 정을 넘어선 스승의 채찍인지 알 수 없는 처절한 인연을 운명으로 칭송한다. <천년학>의 소리는 이야기를 이끄는 손이 되었다가 가슴이 되었다가 한다.

남자들의 무용담 <적벽가>가 이따금 나오지만 <춘향가>의 단심에 댈 게 아니다. 그게 <천년학>을 닮았다. 회상에 회상이 겹치면서 시간이 흘러가고, 숨어버리듯 사라지는 여인을 찾아 먼 길을 떠다니는 남자가 있으며, 그 남자의 젖은 눈은 <춘향가>처럼 고전적이다. 또 욕망이 한번이라도 매듭짓기는커녕 엉뚱한 데서 사정해버리는 건 관념적 지연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사랑은 사랑이 이룰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를 그려내고 있다. 송화의 또 다른 분신 단심(오승은)과 동호의 또 다른 분신 용택(류승용)이라는 겹겹의 구조로 감싸안아서.

선학동 주막 앞의 바다는 간척지로 막히는 바람에 더이상 흐르지 않고 날아들던 학을 쫓아버렸다. 임권택의 손과 눈은 막히지 않고 흘러흘러 그 모든 작품의 아름다운 속편 같은 학 한 마리를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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