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극락도 살인사건>을 여는 첫 번째 컷은 멀리서 바라본 극락도의 전경이다. 검은 파도를 겹겹이 두른 그 모습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누군가처럼 비밀스럽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오페라 극장 살인사건>) 등 밀실연쇄살인 추리물의 대표작들 역시 모두 등장인물이 외딴섬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스무명을 넘지 않는 등장인물이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시체 수에 비례하듯 남은 이들의 갈등과 광기는 증폭되며, 인간의 추악한 욕망 혹은 본성이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섬이라는 물질적 공간은 심리적 공간이자 주제를 은유하는 공간으로 확장·변주된다. 제한된 공간 속 익숙한 얼굴들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공포가, 눈앞에 펼쳐진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박한 고립감이, 섬이라는 공간을 택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제목이 자신이 속한 장르와 심지어 줄거리의 일부까지 명시하는 <극락도 살인사건> 역시 비슷한 길을 간다.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임춘애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직전, 한 낚시꾼이 사람의 머리를 낚아올린다. 머리의 주인은 인근에 자리한 섬 극락도 주민의 것임이 밝혀지고 뒤늦게 섬에 당도한 형사들은 당시의 어수선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에서, 사건의 전모를 따진다. 극락도(極樂島)가 결국 극악도(極惡島)로 변하기까지의 며칠 동안, 주민 모두가 크게 웃으며 어수선한 잔치를 벌이던 이곳은 이내, 주민 모두가 큰 소리로 맞서며 눈을 부라리는 곳으로 변모한다. 결국 주민 17명 모두는 범인으로서 손색이 없는 광기와 수상한 행동을 보여준다. 보건소장 제우성(박해일)은 지나치게 안정만을 강조하는 모습이 의아하고, 여선생 장귀남(박솔미)의 당찬 추리도 왠지 수상하다, 어수룩한 한춘배(성지루)는 수상한 쪽지를 모두에게 보여주며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바쁘고, 이장(최주봉)과 그의 두 아들은, 나머지 주민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을 공유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뿐 아니다. 섬을 지배하는 열녀전설과 관계된 가문의 마지막 한 사람인 김 노인(김인문), 과거를 짐작할 수 없는 용봉거사(김병춘), 세 번째 희생자를 살인범으로 오해하도록 만든 판수(박길수), 여기에 평범하고 천진한 두명의 초등학생까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스릴러 혹은 미스터리는 한국영화가 유난히 취약한 장르다. 초보적인 법칙도 숙지하지 못한 채 빈약한 반전과 진부한 쇼크요법을 반복한 구제불능의 실패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스터리스릴러 <텔미썸딩>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뭔가 있어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 운좋은 영화였고, 역사추리극 <혈의 누>는 장르를 빌려 이야기하려는 주제가 두드러진 영화로 장르 자체에 몰두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감독이 공포영화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지는 요즘. 미스터리추리극을 표방하는 <극락도 살인사건>의 가장 큰 미덕은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장르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정체불명의 자막부터 시시껄렁한 농담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성실하게 깔아놓은 복선은 관람 뒤 곱씹을 거리를 제공한다. 적지않은 등장인물 각각에게 부여한 캐릭터들은 어찌 보면 기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걷잡을 수 없는 광기와 귀기가 온 마을을 감싸는 모습까지 설득력있게 연결된다. 결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퍼즐 자체가 맞지 않아 찝찝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전반적으로 추리 요소가 다소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반전에 대한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서 복잡한 이야기의 전체적인 아귀를 맞춘 내공이 느껴진다.
여기에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추리요소를 제거하고 다른 장르를 공들여 가미한 것이다. 사람 머리가 발견되는 순간부터, 17명의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방식, 무엇보다도 지난 밤 실종자를 목격한 주민의 회상을 연출함에 있어 <극락도 살인사건>의 전반부에는 꽤나 여러 번에 걸쳐 코미디가 시도된다. 단순히 관객의 지루함을 덜겠다거나 모든 장르에 코미디를 접목하는 최근의 트렌드를 따르려는 의도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코미디보다 깊은 인장을 남긴 것은 호러다. 물론 대부분의 밀실살인 텍스트는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각 인물들이 자신의 허황된 욕망이나 본성과 마주하게 되므로, 단순한 추리극에 호러가 가미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에드거 앨런 포 이래 수많은 추리작가들이 괴담의 서늘함과 추리의 명쾌함을 한데 버무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포상받기 위해 며느리를 열녀로 굶어죽게 만든 김 노인 집안의 역사는 영화의 후반부 섬주민 모두의 집단적인 무의식으로 작용하는데, 웬만한 공포영화보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기대치 않았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는 홍보 초기, 극락도라는 섬과 이와 유사한 실종사건이 실제했는지의 여부로 잠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김한민 감독이 80년대 열명 남짓한 주민이 단 한구의 시체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문을 들었고 이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야기도 보도자료에 명시되어 있다. 관객의 흥미를 극대화할 부분들이지만, 자칫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얻음으로써 실망감을 유발할 수도 있다. <살인의 추억> <그놈 목소리> 등 실제 사건을 극화한 영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순수한 장르적 쾌감에 열중하는 이 영화가 가볍다고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극락도 살인사건> 주민들의 몰살은 첫 번째 살인을 제외하면 관객의 눈앞에서 우발적으로 급작스럽게 벌어진다. 시체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물론, 밀실살인의 최대 묘미인 ‘누가’ 혹은 ‘어떻게’에 대한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희생의 공식을 미리 밝혀서 등장인물과 함께 관객의 마음까지 졸이게 만드는 장치도 없다. 결국 중요해지는 것은 ‘왜’라는 항목뿐이다. 물론 그러한 질문보다는 공포가 중요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더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종미스터리라는 꽉 짜여진 추리극이 아니라, 미스터리 호러스릴러 정도의 포장으로도 관객을 끌 수 있지 않을까. 모든 홍보가 곧이곧대로 정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만큼은 본 영화가 지닌 고유한 흥미지점과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그 편이 나았을 거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