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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영화평 ① 치유의 환상, 그 환상의 슬픔

순리로, 판타지로 그린 일탈과 복귀의 여정

한 여자가 남편의 외도를 알고 괴로워하고 있다. 하필이면 그 시간,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한 사형수의 기구한 운명이 흘러나온다. 송곳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던 남자는 죽지 못하고 목소리를 잃었다. 여자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사형수를 찾아가고, 감옥의 면회실에서 그들은 이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김기덕은 이렇게 썼다. “증오가 들이마시는 숨이라면… 용서는 내쉬는 숨이다….” 아마도 <>에서 김기덕은 이 조화로운 세계를 꿈꿨을 것이다. 여자는 스스로 사계절이 되어 남자에게 총천연색의 삶을 선물한다. 남자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 죽음이 되어 여자에게 두렵고도 매혹적인 죽음의 형상 혹은 열망을 선사한다. 여자의 송장 같던 마음과 남자의 송장 같던 삶에 욕망의 열기가 들어선다. 여자는 말을 하는 대신 노래를 부르고 남자는 육체의 언어로 화답한다. 현실의 언어가 부재하고 현실의 시간이 사라진 이 시공간은 하나의 완결된 세계가 된다. 그렇게 볼 때 이 세계는 더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정녕 아름다울 뿐인가?

‘사형수와 유부녀의 불가능한 멜로’라는 표피를 거두고 본다면, <>은 절망에 빠진 한 여자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크게 보자면, 여자의 길은 감옥 밖의 현실에서 시작해서 감옥 안의 세계를 지나 다시 현실로 이어진다. 그것은 마치 현실-판타지-현실, 일상-여행-일상처럼 폐쇄된 순환의 구조를 취한다. 이 커다란 순환의 구조 속에는 또 하나의 순환이 잠재되어 있는데, 그것은 감옥 안에서 펼쳐지는 시간의 순환, 즉 겨울에서 시작해서 겨울에 끝나는 계절의 흐름이다. 그래서 <>은 전체적으로 원형의 구조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영화는 끝에 가서 다시 처음의 지점으로 돌아간다. 그 귀환의 행로는 필연적인 순리처럼 그려진다. <>과 <시간>의 가장 명백한 차이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를테면 <시간>에서 시간의 반복은 파멸을 낳았다. 여자가 성형수술로 자연을 거스르고 새로운 시간을 꿈꿀수록, 시간은 그녀의 의지를 벗어났다. 반복은 아무것도 복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의 반복은 <시간>과는 다르다. 이때의 반복은 일면 시간의 순환을 창조한 여자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는 두번의 겨울이 반복된다. 그녀가 처음 사형수를 방문한 현실의 겨울과 그녀가 감옥에 봄, 여름, 가을의 시간을 불어넣은 뒤 다시 세상으로 나올 채비를 하는 겨울이 그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두 겨울은 같은 시간대에 놓여 있지만, 그 둘은 분명 다른 겨울이다. 두 번째 겨울, 여자가 사형수와의 마지막 순간을 섹스로 채울 때, 그녀는 마침내 어린 시절 겪었던, 기원과도 같은 죽음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그렇게 해서 사형수와의 관계를 마무리하고 감옥을 나서고 자기 내면의 분노를 떠난다. 감옥 밖에는 흰 눈이 내린다. 그녀가 남편과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를 때, 과거의 상처와 어떤 죽음(들)은 이미 추억이 된다. 이 두 번째 겨울은 그녀에게 처음보다 ‘덜 나쁜’ 겨울이다. <>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어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 과거의 고통이 눈으로 덮이는 더 나은 순간이다. 그럴수록 사형수 장진과 감옥에서의 일들은 이 여정의 흔적 혹은 판타지처럼 기억된다.

그러니 <>에는 <시간>에서처럼 처음으로 돌아가 무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택하는 의지 같은 것이 없다. 대신 이 영화에는 치명적인 일탈과 결국은 복귀의 움직임이 있다. 그것의 미학을 떠나 그 행로의 윤리를 따지다 보면, 때때로 ‘중산층 여자의 일탈과 가정으로의 복귀’라고 거칠게 요약하고 싶은 욕망도 생긴다. <>은 <시간>과 <빈 집>의 그림자를 지니지만, <시간>의 처절한 물질성과 <빈 집>의 시적인 상상력이 주던 울림과 비교했을 때, 무언가로부터 한발 물러서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후퇴의 몸짓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절박한 변명은 화해와 치유라는 말일 것이다. <>에서 김기덕은 남녀의 면회실 장면을 훔쳐보는 보안과장으로 출연해서 그의 전작들에 줄곧 등장했던 익명적인 시선의 자리에 자신의 시선을 위치시킨다. 그의 얼굴은 남녀의 행동이 그대로 전달되는 모니터의 화면 위에 그들의 일부처럼 어렴풋이 비친다. 그때 사형수와 여자뿐만이 아니라 김기덕 또한 감옥이라는 영화 속 치유의 공간에 속하게 된다. 영화의 내용과 감독의 행로를 연결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은 온갖 스캔들을 뚫고 한결 평온해진 김기덕의 내면을 반영하는 영화, 그 정도 선에서 멈추는 듯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묻고 싶은 질문. 그녀의 두 번째 겨울은 정말 처음보다 ‘덜 나쁜’ 겨울일까? 내게 <>은 오히려, 그러한 여정을 치유라고 믿고 싶어하는 여자와 감독 자신과 우리의 환상, 그 환상의 슬픔을 말하고 있는 영화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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