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육아휴직이 끝나므로 젖먹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는 게 큰 과제다. 어느 날 작정하고 집을 나왔다. 오다가다 만난 아기들 집을 찾았으나 다들 사정이 있어 못 놀았다. 놀이터를 어슬렁거렸다. 웬일인지 애들이 한명도 없었다. 눈이 따갑고 기침이 자꾸 나왔다. 심한 황사가 예고된 날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사려 깊지 못한 엄마 탓에 동네 황사란 황사는 다 마시고 다녔으니. 그러고도 멀쩡한 애에게 큰절이라도… 캑.
‘산들산들 따뜻한 봄바람’은 이제 ‘캑캑 누런 봄바람’으로 바꿔써야 할 듯싶다. 고비사막이 급격히 넓어져 세계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판이라고 한다. 몽골 국토의 90% 이상에서 사막화가 진행돼 숲과 호수와 강과 초지는 쩍쩍 갈라지고 있단다. 그 바람에 우리나라의 연간 황사 발생일수는 2000년 이후 평균 12.8일로 1980년대에 견줘 세배 이상 늘었고 농도도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한겨레21> 652호 지구온난화 대형기획 “적도야 울지마…” 참조).
지구가 끔찍해지고 있다. 북극의 곰들은 미쳐서 지들끼리 잡아먹기도 하고(심지어 ‘북극의 박태환’이랄 수 있는 곰들이 얼음이 녹아 쉴 곳 없는 관계로 하염없이 헤엄치다 익사하기도 한단다), 적도의 작은 섬나라들은 금세기 안에 바닷속에 잠길 운명이다. 동해의 오징어가 서해에 마구 출몰하고, 명태는 거의 씨가 말랐다(으허엉, 내 사랑 명태식혜).
쓰레기 분리수거 열심히 하고 전기·수도·가스 아끼고 자가용하고도 이혼하고 지내건만(갑자기 금모으기 운동이 생각나네), 지구 에너지의 3분의 1을 쓰는 미국인도 아니건만,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죄책감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이냐(알았어. 사육 과정에서 온실가스 발생량 엄청난 쇠고기는 끊어보겠어. 안 그래도 한-미 FTA 땜에 고기맛도 떨어졌어).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달리고 세우고 먹어온 20세기 출신자들의 숙명인가? 미안하다. 21세기에 태어난 딸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간간이 황사 먼지 들이켜게 해 너의 면역을 길러주는 것밖엔. 그래도 담배는 피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