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이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04년 공사를 시작한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로 향하는 영상자료원의 이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 1990년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 건물 내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 둥지를 튼 지 17년 만의 일이다. 지상 2개층과 지상 4개층 2998평 규모의 영상자료원 신청사는 총 3개의 상영관과 영화박물관, 영상열람실, 그리고 총 463평에 달하는 복원 및 보관 공간을 갖추고 있다. 기존 자료원과 비교할 때 절대 면적의 증가보다 중요한 변화는 영화박물관이 신설된다는 점이다. 이로써 한국영상자료원은 수집한 자료를 복원하고 보관하는 아카이브, 소장 자료를 대중에 소개하는 박물관, 영상자료를 상영하는 시네마테크, 각종 비필름 자료를 정리하는 라이브러리라는 일반적인 영상자료원의 네 가지 구성요소를 갖추게 되는 셈이다.
현재 상암 DMC의 영상자료원 신청사는 완공을 마치고 새 주인의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자료의 이전은 오는 4월25일부터 진행되고, 사무국은 5월11일 이사한다. 제일 먼저 새로운 모습을 이용객에게 선보이는 것은 영상열람실과 상영관으로, 6월1일에 개관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 자료원에 비해 질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선보이는 것은 좀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현재보다 두배가량 넓어진 공간에 자리하게 될 영상열람실은 올해 11월부터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고, 본격적인 시네마테크 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상영관과 신설되는 영화박물관은 내년 봄에야 대대적인 개관행사를 가질 것이다. 이처럼 주요 서비스 시설의 본격 개관이 이전과 동시에 이뤄지지 못한 것은 이를 위한 예산이 포함된 영화발전기금이 예상보다 늦어진 올해 하반기에야 집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급 상영시스템 구축, 영화박물관 신설
아직 1년 정도 시간이 남아 있긴 하지만, 달라진 모습을 선보이기 위한 준비는 이미 활발히 진행 중이다. 연구교육팀 정혜연씨에 따르면 275평 규모의 영화박물관은 기본적으로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 그리고 체험교육시설로 나뉘게 된다. 상설전시관은 한국 영화사를 연대기별로 정리하는 가운데 특정 주제에 대한 전시가 이뤄질 것이며, 반년에 한번 정도의 주기로 전시를 바꿀 기획전시관에서는 임권택 감독 특별전 등을 개최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연구교육팀의 박물관 관계자들은 현재 여러 가지 전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박물관을 관람한 이용객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한국영화 포켓북 시리즈 중 첫 9권은 이미 기획이 끝난 상태다.
고전영화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인 자료원의 상영관 역시 설비나 규모 면에서 획기적으로 발전된다. 서초동 시절 35mm영화만 상영할 수 있는 110석 규모의 시사실 A와 16mm 및 디지털 상영이 가능한 70석 규모의 시사실 B는 상암동에서 각각 312석과 150석 규모의 대형관과 중형관, 그리고 다목적룸으로 거듭난다. 일반 멀티플렉스 상영관급의 시스템을 갖추게 됨에 따라 앞 좌석에 누군가가 앉기만 해도 정상적인 관람이 불가능했던 현재 상영관의 모든 문제는 해결될 전망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세개의 상영관이 모든 포맷의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는 점이다. 연구교육팀 김한상씨는 이에 대해 “2년 전 ‘욕망예찬’이라는 이름으로 김기영, 스즈키 세이준,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진행할 때, 16mm 일본영화는 모두 작은 규모의 시사실 B에서 상영해야 했다. 관객이 많이 들 만한 중요한 영화임에도 포맷 때문에 상영관을 변경하는 일이 이제는 사라질 것이다. 시네마테크로서 본격적인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영상자료원의 새로운 상영관은 내년 봄부터 분기별로 하나씩 1년에 걸쳐 네 가지 정도의 개관행사를 준비 중이다. 1900년대 초 아시아에서 찍은 영화를 묶는 기획전을 비롯하여 내년에 사망 10주기를 맞이하는 고 김기영 감독 전작전, 해외 자료원과의 네트워크를 통한 해외초청전 등이 그것이다. 현재 클래식 한국영화 릴레이, 외국인과 함께 보는 고전영화, 해피 투게더 독립영화 등 요일별로 순환하는 상설프로그램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우선 신청사 상영관의 정식 개관까지 1년 정도는 한주 단위로 특정주제를 커버하는 프로그래밍으로 “그간 서초동에 형성된 고정관객층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관객을 개발”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현재의 고전영화관은 4월부터 두달간 모든 상영프로그램을 중단한 뒤, 자료원이 이전을 마치는 오는 6월 신청사 상영관과 함께 재개관해 당분간 기존 고전영화관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전용수장고 등 최적의 자료보관 환경 갖춰
자료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갖추게 된 것 역시 중요한 변화다. 영상자원관리팀 장광헌 팀장은 “무엇보다도 전용수장고가 생긴다는 게 뿌듯하다. 서초동 수장고는 사무용 건물에 변칙으로 만든 곳이지만, 상암동은 설계부터 목적에 맞춰서 이뤄졌기 때문에 필름의 영구보존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라는 영상 5도를 구현할 수 있다. 이제야 비로소 해외 아카이브와 견줄 만한 자료보관 환경을 갖췄다”며 기뻐한다. 현재 영상자료원이 보유한 비필름 자료는 전량, 필름 자료는 32% 정도가 신청사로 이전해야 한다. 오는 4월25일부터 5월11일까지 “12t 트럭 80대 분량”의 자료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대이동이 이뤄질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1974년 한국필름보관소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이래 최대 규모의 이사인 셈이다. 장광헌 팀장에 따르면 1990년 서초동으로 옮겨올 때와 비교했을 때 2007년 현재 필름자료는 6500벌에서 1만7천벌로, 비필름은 5배 이상 증가했다. 모든 자료의 1차 분류를 마치고 이전하기 위해, 추가로 고용된 계약직 직원들이 자료분류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이후 패킹과 라벨링, 꼼꼼한 확인작업을 거쳐 대장정에 오르게 될 텐데, 이를 위해 자원관리팀은 자료별 이전 시나리오를 매일같이 새로 쓰고 있다고 장광헌 팀장은 귀띔한다. 강점기 영화 등 자료원의 1급 희귀자료들이 특별관리 대상이며 운송보험은 필수다. 서초동에서 상암동까지 자동차로는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 그러나 그 이동은 가히 ‘미션 임파서블’급이라고나 할까.
상영관 대관, 비디오·DVD 대출 등 서비스 대혁신
오랜 더부살이를 끝내고 전용 건물 입주를 앞둔 자료원 사람들은, 눈코 뜰 새 없는 이사 준비에도 불구하고 내심 들뜬 눈치다. 신청사로의 입성은 단지 공간의 이동 및 확장을 넘어 자료원의 위상을 새로 정립하는 것과도 직결된 사건이다. 조선희 한국영상자료원장은 “아카이브의 역할은 자료의 수집과 보존, 그리고 활용으로 나뉜다. 그간 자료원이 어쩔 수 없이 전자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면 앞으로는 보존과 활용의 균형을 맞춰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무리 귀중한 자료라도 대중이 이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일 뿐이건만, 그간 영상자료원은 인력과 시설 부족으로 본의 아니게 ‘폐쇄적’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상암동 시대를 앞둔 자료원은 지금 파격적인 문호개방을 준비 중이다. 우선 오는 6월부터 1년간 자료원은 각종 단체나 행사주체에 대해 상영관을 무료로 대관할 예정이다. 또한 연구 및 학술 목적의 시사는 80%까지 할인혜택이 주어져, 각 대학 영화과가 자료원 시설을 수업에 이용하기 한결 쉬워진다. 각종 영화와 영화 관련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 자료실 역시 많은 변화를 앞두고 있다. 그간 500원씩 받았던 열람료가 사라지고, KOFA 변환자료 이용료 역시 5천원에서 2천원으로 인하된다. 그간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능했던 비디오, DVD 자료의 대출이 가능해지며, 인터넷으로 자료실 이용을 예약하는 서비스도 시작한다. 현재 규모보다 2배 가까이 규모가 커질 자료실 안에는 디지털미디어를 위한 섹션이 생기는데, 이곳에서는 자료실이 텔레시네본을 보유한 영상자료 1천편의 VOD 관람이 가능해진다. 2600편에 달하는 영화의 O.S.T를 무료로 청취할 수도 있다. 인터넷상의 VOD 서비스 역시 확대되는데, 현재 저작권이 완료된 것 중 일부를 볼 수 있었던 VOD 서비스가 자료원이 직접 저작권을 구입한 영화 200여편으로 확대되어 유료 서비스로 제공된다. 달라진 서비스를 맛보기 위해 오는 11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서운할 뿐이다.
이사와 함께 자료원이 앞두고 있는 또 다른 큰 변화가 있다. 인화기와 스캐너를 구입함으로써 복제복원 시스템 구축이라는 숙원사업의 물꼬를 트게 된 것이다. 비로소 영상자료원이 이름에 어울리는 전문장비를 갖추게 된 셈인데, 조선희 원장은 이에 대해 영상아카이브의 “선진화가 아닌 정상화”라고 역설한다. 재단법인 한국필름보관소로 출범한 이래 30여년 만에 맞이한 한국영상자료원의 이러한 변화는 지난 10여년간 달라진 한국영화의 위상에 어울리는 것이기도 하다. 선진화든 정상화든, 한국영화의 팬, 그리고 현재의 문화를 즐기는 것 못지않게 보존하고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 모든 변화는 반가울 따름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이처럼 업그레이드된 각종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한국영화계와 그 관객의 몫이다.
조선희 한국영상자료원장 인터뷰
“올해는 독립영화의 아카이빙을 본격화한다”
-오랜 전세살이를 마치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이제는 좀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사업을 벌일 때가 된 것 같다. 여태까지는 의무납본 대상인 장편 극영화의 수집과 보존관리에만 주력했다면, “세상의 모든 영화가 자료원에 있다”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수집대상을 대폭 확대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인데, 올해는 독립영화의 아카이빙을 본격화한다. 2004년부터 한해 5천만, 6천만원 정도 예산 안에서 그해 독립영화제 수상작 20여편을 수집하고 있었지만, 그 이전의 독립영화는 거의 수집이 불가능했다. 2003년 이전의 독립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수집 대상이다.
-올해는 이효인 전임 원장 때부터 논의되었던 디지털 아카이빙이 본격화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세 가지 정도의 사업이 진행 중이다. 디지털 파일로 생산되는 영화의 수집, 저작권을 구입한 고전영화의 인터넷 유료 VOD 서비스, 플래시 동영상이나 인터넷 영화 등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의 수집 등이다. 온라인 콘텐츠는 너무나 방대한 작업이어서 일단은 분류와 선별, 이용의 기준을 세우기 위한 연구 단계다.
-많은 변화를 구상 중인데, 전체적으로는 어떤 비전 아래 진행되는 것인가. =자료원이 보유한 콘텐츠의 활용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자료원 이전에 따른 가장 큰 변화가 상영관의 발전과 박물관 신설이라는 것이 영상자료원의 아카이빙 전략 자체가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련한 인원 확충과 조직정비도 어느 정도 이뤄질 것이다. 박물관과 관련하여 내년쯤에는 영상자료원 산하의 한국영화연구소를 출범시키는 것도 생각 중이다. 그간 구술작업, 신문 자료 정리 등을 통해서 연구자를 위한 1차 자료를 제공하는 자료원 본연의 임무를 다해왔지만, 이를 더욱 확대하여 한국영화사연구 업적 자체를 대중화하는 것 역시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