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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영국 영화계엔 배우만 있다?

전통적 배우의 산실이면서 소극적 제작풍토, 여성감독에 대한 배타 존재하는 영국 영화계의 명암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릴 때마다 영국 영화계가 ‘배우의 산실’임을 자부해오던 차에, 올해 세명의 여배우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려 애초부터 표정관리가 힘들었다. 그래서 ‘누가 상을 받든 어떠하리오’라는 태평가부터 ‘할리우드로 제자리를 찾아간 베컴 부부는 언제쯤?’이라는 객쩍은 농을 던질 정도로 여유로운 관전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이 연기자에게로 쏠려 있을 때, 영국 영화 제작의 현주소를 지적하는 몇몇 목소리는 영국 영화계가 잔치 분위기에서 잠시나마 잊으려던 시름거리를 들춰낸다.

LA를 본거지로 직원 열다섯명이 꾸려가는 소규모 제작사 이니셜엔터테인먼트그룹 대표인 그레이엄 킹의 일갈은 그나마 낙관적인 냄새도 묻어난다. 런던 변두리 출신으로 청년 시절 할리우드로 건너간 그는 올해 <디파티드>와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제작해 10개 부문 후보를 배출했고,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트래픽> 등 이전 제작 작품까지 4년 사이에 38개 부문의 후보를 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런 그가 영국에서도 제작을 하겠다고 밝혔으니 제법 솔깃하게 들린다. 빅토리아 여왕의 젊은 시절을 그리고자 한다는 귀띔을 하면서도 영국에서 영화를 제작하려는 시도가 쉽지만은 않았다고 밝힌다. 그가 보기에 영국영화는 “영국 바깥에는 전혀 눈을 돌리지 않고, 스스로 발돋움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소심함을 보인다. 성장하려면 돈을 들이부어야 하는데, 그런 식의 위험을 감당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두 번째 목소리는 훨씬 암울하다. 여성영화제인 버즈 아이 영화제에 참석한 다섯명의 여성 영화감독은 영국에서 여자가 영화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지 성토한다. 여성감독이 만든 장편 비율이 11%를 차지했던 2000년을 정점으로, 이전이나 이후나 여전히 7% 정도에 머물고 있으며, 이 비율은 미국과 영국이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겪는 고충은 할리우드보다 영국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적어도 할리우드에서는 제작에 들어간 이상 여성이라는 성별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영국에서는 이만저만 고단하기 짝이 없단다. 결정적으로 제작자를 비롯한 영화계의 (남성) 권력 집단들이 여성감독을 신뢰하지 않고 그 기회를 고스란히 젊은 남성감독에게 넘기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여배우만 있을 뿐이다.

그레이엄 킹과 여성감독 사이에는 아이러니가 놓여 있다. 그레이엄 킹의 영국 내 신작은, 여성감독들의 지적을 그대로 반영하듯, 프랑스계 캐나다 출신의 젊은 남성감독 장 마르크 발레(<크레이지>(C.R.A.Z.Y)가 맡을 예정이다. 하지만 킹은 할리우드에서 조지 포스터와 함께 <복사의 위험한 삶>의 제작을 맡은 바 있다. 빛나는 영국 여배우, 할리우드 제작계의 기린아, 그리고 정열적인 여성감독, 이들의 결합이 베컴의 할리우드 데뷔보다 빨리 이루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