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위한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FTA 수석대표간 고위급 협상에서 한국쪽은 타 분야의 미국쪽 요구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카드로 스크린쿼터 현행유보를 내세웠다. <한겨레>(3월23일자)는 고위급 협상이 끝난 3월21일(미국시각),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스크린쿼터를 ‘미래유보’에서 ‘현행유보’로 양보한다면 미국이 요구사항에서 뭘 포기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실도 3월22일 논평을 내 “한국 협상단이 스크린쿼터의 현행유보를 확정했다”면서 “이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쪽이 현지에서 한국 협상단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요구를 한국이 사실상 받아들임으로써 73일로 축소된 스크린쿼터 회복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현재 개방 수준에서 동결을 의미하는 현행유보 결정은 앞으로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등의 상황을 맞아도 현행 73일 이상으로 스크린쿼터를 늘릴 수 없음을 뜻한다. 미국쪽은 지난해 9월 3차 협상과정에서부터 스크린쿼터 현행유보를 주장해왔으나, 최근까지도 정부는 추후 개방 철회 등을 취할 수 있는 미래유보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2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업무보고 자리에서 “미래유보로 된 사안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번 고위급 협상에서 스크린쿼터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관련 협상단에 참여조차 못했다. 천영세 의원실은 “스크린쿼터 현행유보 방침으로 얻은 협상상의 소득이 무엇이냐”며 정부를 공격했다.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한국 협상단의 스크린쿼터 현행유보 방침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영화계는 더이상 정부에 기대할 것이 남지 않았다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 양기환 대변인은 “매번 정부는 스크린쿼터와 FTA가 무관하다고 말해왔는데 이번에도 또 거짓임이 드러났다”면서 “말바꾸기를 계속하는 도덕적 파산 상태의 정부와 더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3월18일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이 국제법으로 공식 발효됐으나 한국은 협약 채택국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한-미 FTA 체결을 위해 16개월이 넘도록 국회 비준을 미루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