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빼꼼’은 EBS와 투니버스에서 방영된 TV시리즈 <빼꼼>으로 이미 스타덤에 오른 ‘코믹 배우’다. 2~3분 내외의 단편인 <빼꼼> 시리즈에서 주연한 이 백곰 캐릭터는 쇼핑몰 회전문에 끼거나 러닝머신 위에 올라 허둥대며 웃음을 자아낸다. 논버벌 애니메이션(non-verbal animation)이라 대사는 “웅? 웅? 우어어~”가 전부. 100% 국내 기술의 3D그래픽으로 창조된 백곰의 실수연발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빼꼼> 시리즈는 2002년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주목받은 단편 <아이 러브 피크닉>을 TV시리즈화한 작품으로, 이미 영국 <BBC>, 미국 카툰네트워크, 프랑스 M6 등 20개국에 수출 계약을 체결한 ‘성공한’ 상품이기도 하다. <빼꼼의 머그잔 여행>은 임아론 감독의 RG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TV 시리즈 공개 이전인 2002년부터 준비해온 장편 프로젝트다.
우연히 마법의 펜던트를 손에 넣은 겁많은 어린이 베베가 펜던트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머그잔을 타고 북극으로 날아간다. 거기서 만난 백곰 빼꼼은 위기상황에서도 머리만 대면 잠들 수 있는 둔한 신경을 자랑한다.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미녀 펭귄 도도를 좋아하지만 신사 펭귄 꽁꽁만 바라보는 도도는 빼꼼에게 콧방귀만 뀐다. 도도를 둘러싼 야단법석 사랑싸움에 베베의 펜던트가 휘말리며 사막과 무인도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모험이 벌어진다. 줄거리는 다소 뻔한 어린이 모험담이지만 각 캐릭터의 개성에 맞게 선보이는 다채로운 슬랩스틱과 유아를 위한 적정 수준의 ‘화장실 유머’가 맛깔나다.
하지만 ‘머그잔을 타고 가는 신나는 세계여행’이라는 홍보 문구와 달리 아쉽게도 <빼꼼의…>가 선보인 비주얼은 북극의 설원과 사막의 모래벌판이 전부다. 임아론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승부처로서 화려한 그래픽보다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내세우지만, 간결한 단편 스토리에서 발휘된 임 감독의 상상력은 안정적인 장편 내러티브로는 확장되지 못했다. 3~10살 어린이용 엔터테인먼트로서는 안정적인 성과로 보이지만 동반 성인 관객이 76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며 즐길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캐릭터 상품을 팔기 위한 광고물 그 이상이 되려면 아직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