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PD인 석호(최원영)는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아는 동생인 채영(김푸른)에게 전화를 건다.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며 운을 뗀 뒤, 이내 사귀고 싶다는 본색을 드러낸 석호는 다음날 채영을 만나 합의에 성공한다. 물론 석호의 진짜 본색은 채영과의 섹스다.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해보지만 채영은 그저 “나중에”, “다음에”를 반복하거나 “내가 그렇게 쉽게 보여?”라며 화를 낼 뿐이다. 영화는 다시 석호의 통화장면으로 돌아가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채영은 사실 또 다른 남자친구 선수(이정우)와 이미 모텔을 드나드는 사이. 채영은 선수에게 석호가 ‘그냥 아는 오빠’라고 말하지만, 선수 또한 ‘그냥 아는 누나’들이 많은 이름 그대로의 선수다. 어느 날 클럽에서 만난 연상녀 지연(고다미)과 하룻밤을 보낸 선수는 채영과 데이트를 즐기는 사이에도 지연과 지속적인 만남을 갖는다.
애인 있는 남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남자는 아버지도 아니고, 군대고참도 아니고 그녀의 ‘그냥 아는 오빠’다. 과연 그 오빠는 그녀를 동생으로만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나는 그녀의 또 다른 아는 오빠는 아닐까? 섹시로맨틱코미디를 표방한 <내 여자의 남자친구>는 내 여자와 내 남자가 또 다른 이들의 ‘내 여자’와 ‘내 남자’가 될 수도 있는 연애의 풍속도를 그린다. 그들의 연애에는 진정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다. 남자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은 여자에게는 온갖 정성을 다하지만, 같이 자는 여자에게는 먹고 싶다는 회도 사주질 않는다. 여자는 동갑내기 애인과는 깊은 관계까지 가면서도 연상의 남자에게는 옷이며, 휴대폰이며 각종 선물을 얻어낼망정 잠자리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연애가 가진 적나라한 이면을 들춰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굳이 여기에 신세대의 사랑법 혹은 연애백서 등의 말을 붙일 필요는 없다. 영화의 주된 관심은 적나라한 섹스신과 <펄프 픽션>을 차용한 듯 보이는 이야기 구조다. <내 여자의 남자친구>는 ‘내 여자의 남자친구’, ‘내 여자의 남자친구의 여자친구’ 등 총 5개의 챕터로 6명의 주인공들이 (사랑이 아닌) 섹스로 얽힌 관계망을 보여준다. 앞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살을 붙여 반복되면서 삼각을 거쳐 사각, 오각으로 이어진 이면의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 하지만 인물들이 빚어내는 각각의 사연들이 연애의 여러 측면을 드러낼 만큼 다양한 건 아니다. 극장보다는 오히려 심야시간대의 케이블채널에서 환영받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