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KBS2 수,목 밤 9시50분
‘민비.’ 불과 5∼6년 전까지 우리는 조선의 26대 왕인 고종의 왕비를 이렇게 불렀다. 어린 시절 역사책이나 드라마에서 만났던 민비는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권력싸움을 벌이다 결국 일본 낭인의 칼에 비명횡사하는 탐욕스런 여인이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민비를 ‘명성황후’란 이름으로 다시 접한다. 이름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그녀의 삶과 공과에 대해서도 전과 다른 평가를 듣는다. 여성이란 것 자체가 큰 굴레였던 유교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가치관을 추구했던 인물, 적극적인 세계관과 결단력으로 남편 고종의 통치를 보좌했던 여걸. 새롭게 평가받는 ‘명성황후’의 모습은 대강 이렇다.
특히 KBS2TV에서 방송하는 대하사극 <명성황후>의 모습은 그녀가 등장했던 숱한 사극과는 확실하게 다른 모습이다.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갈등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꺾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살뜰한 아내의 모습을 갖고 있다. 더구나 그동안 사극에서 한쪽이 긍정적인 ‘영웅’으로 묘사될 경우, 대립선상에 서는 인물은 악역으로 묘사된 데 반해, <명성황후>에서는 명성황후나 갈등의 대상인 대원군이나 모두 정치적 신념과 나라를 위해 고뇌하는 인물들이다. ‘선악의 갈등’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선 대 선’의 충돌이다.
그러고보면 요즘 인기 높은 사극 3인방에 속한 다른 두 드라마들도 비슷한 시각을 갖기는 마찬가지이다. SBS <여인천하>는 몇년 전만 해도 천하의 요부이자 탕녀로 그렸을 정난정이 주인공이다. 그녀 역시 극중 모습이 <조선실록>에 불과 몇줄로 축약됐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요부는커녕 자신의 운명을 당당하게 개척해가는 큰 그릇의 여인이다. 세도정치를 주도했던 문정왕후나 그의 오빠 윤원형도 그릇이 범인들과 다르기는 마찬가지이다. KBS1TV <태조왕건>은 어떠한가? 이미 궁예를 미치광이 황제에서 뚜렷한 세계관을 가진 비운의 영웅으로 재평가한 데 이어, 지금은 왕건에 대한 새로운 인물상을 그리고 있다. 얼핏 우유부단한 듯 보이면서도 내면으로 강한 인내를 갖춘 인물이 최근 들어 냉혹할 정도로 정치적 판단이 명확한 군주로 변하고 있다. SBS, KBS와 달리 사극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MBC가 절치부심하고 10월부터 선보이는 대하사극 <상도>도 그동안 왕권 중심의 역사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주인공이다. 조선시대 여러 군주나 공신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간결하게 묘사됐던 인물을 청나라를 오가며 국제무역의 큰 틀을 정립했던 국제적인 기업인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사실 어떤 점에서 보면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사극의 재미는 이렇게 역사의 행간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풀어내는 작가의 창의력에서 출발한다. 최근 들어 사극이 시청률 5위 안에 3편이나 올라올 정도로 인기를 얻는 이면에는 현대극에서 보지 못했던 극적인 인물상과 과감한 해석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사극 속 인물이 만화 같은 비현실적 공간에서 허우적대는 트렌디드라마의 주인공보다 더 사실감 넘친다.
밀로스 포먼이 연출한 영화 <아마데우스>는 원래 극작가 피터 셰퍼가 쓴 희곡이 원작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모차르트의 죽음에 살리에리가 깊게 관여했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 살리에리는 영화에 등장했던 것처럼 자신의 재능이 박함을 탓하며 모차르트를 저주했던 소인배는 아니었다. 그 나름대로 당대를 풍미한 작곡가였고 특히 많은 음악가들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에는 베토벤, 리스트 등이 있었고, 모차르트의 아들도 그에게서 음악을 공부했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 따진다면 <아마데우스>는 이만저만한 왜곡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역사적 인물을 작가의 창의력으로 새롭게 재정립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에 대한 외경의 충돌을 그린 수작으로 꼽힌다.
사극이 큰 인기를 더으면서 극중 인물에 대한 역사적 고증 착오나 왜곡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예를 들어 궁예가 기록에는 보리를 훔쳐먹다 농민들에게 맞아죽었는데 왜 자결로 처리했느냐,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동생인데 왜 오빠로 설정했느냐 등이다. 어찌 보면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을 잘못 기술한다는 것은 리얼리티면에서 큰 실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극은 ‘역사스페셜’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역사라는 토지 위에 사적 인물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만든 창의력과 상상력의 구조물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로 만들어진 인물을 마치 시험답안지 확인하듯 일일이 대조하며 맞춰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작가의 창의력과 행간을 짚어가는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이다. 과연 대원군 실각 이후 명성황후가 실질적 세력을 잡게 되면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갑오경장, 아관파천, 동학농민전쟁 등은 어떻게 그릴까? 일본과 러시아를 오가며 줄타기 외교를 했던 그녀의 정책은 아무런 사심이 없는 것이었을까?
드라마에서 역사적으로 왜곡된 평가를 받던 인물을 재평가해 새롭게 구성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고 특혜이다. 하지만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영웅을 만들기 위해 엄연히 있었던 역사적 사건까지 왜곡한다는 것은 작가의 재량권을 벗어나는 일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일방적인 찬사나 미화로 윤색된 영웅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며 피와 눈물을 흘렸던 살아 있는 인간을 보고 싶은 것이다. 만약 대원군의 결정도 모두 나라를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고, 명성황후의 집권도 몰락한 민씨 일가의 재기나 개인적 욕심없이 오로지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였다면 과연 조선이 격변기를 겪으면서 몰락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아무것도 모르고 권력층의 세도 다툼에 휘둘렸던 순진한 민초의 죄?
앞으로 펼쳐질 드라마 속에서 나타날 제작진의 역사관이 어떨지를 주목하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우리의 역사는 주연 여배우의 카리스마를 키우기 위해 윤색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상처를 안고 있다.
김재범/ 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sport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