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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할리우드 프로젝트 <폭력의 종말>

EBS 3월 10일(토) 밤 11시

빔 벤더스의 <해미트>(1982)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초청으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벤더스에게 미국은 풍요로운 문화와 영감으로 가득한 영화적 창고와 다름없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할리우드 시스템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결국 <해미트>는 실패했고, 그는 마치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한 듯한 영화 <사물의 상태>를 통해 할리우드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15년 뒤, 그가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와 만든 영화가 <폭력의 종말>이다. 여전히 중심 소재는 할리우드이며 이번에는 빌 풀먼, 앤디 맥도웰 등과 같은 스타급 배우들에게 배역을 맡겼다.

주인공 막스(빌 풀먼)는 폭력영화를 만드는 할리우드의 거물급 제작자이다. 어느 날 그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두 남자에게 납치당한다. 그러나 다음날 신문 지상에 보도된 사실은 살해된 두 남자의 시체와 막스의 실종이다. 막스는 히스패닉 정원사들에게 발견되어 그들과 함께 노동을 하며 숨어 지낸다. 경찰은 수사에 나서고 막스가 부재한 할리우드는 여전히 다른 누군가에 의해 아무 일 없던 듯 돌아간다. 한편 이 사건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한 NASA의 옛 직원 레이 버링은 감시카메라로 그날의 살해장면을 목격한다. 하지만 그 역시 살해당하고 사건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막스는 할리우드로 돌아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폭력의 종말>은 자신의 의지대로 폭력을 상품화하던 남자가 폭력의 한가운데에 무기력하게 내던져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이미지로 점철되고 영화로 형상화된 가짜 폭력과 현실 속의 진짜 폭력 사이에는 과연 경계가 존재하는가? 표면적으로는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쫓기는 게임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 폭력과 관련된 일종의 아이러니다. 막스가 할리우드에서 폭력의 이미지를 만들고 지켜볼 때, 사실 그의 삶은 실체없는 폭력에 지배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의 육신이 폭력의 한가운데에 존재하게 되자, 그는 비로소 폭력의 본질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벤더스 특유의 로드무비는 아니지만, 안정된 터전을 떠난 여정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면에서는 그 맥락에 위치한다. 물론 <폭력의 종말>에서의 깨달음은 화해와 용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혹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폭력의 종말’이란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회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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