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SF> 조남준 지음/ 청년사 펴냄
먼저, 시사주간지에 시사만화를 8년 동안 연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는 사람만 안다. 시사만화는 안팎의 검열에 시달리면서 통렬한 한방을 내장해야 하는, 칼로리가 꽤 많이 소비되는 작업이다. 상상력의 푸른 숲은 곧 쩍쩍 갈라지는 마른 논바닥이 된다. 매주 마감을 가리키는 시곗바늘이 면도날이 돼서 목 근처를 간질인다. <시사SF>는 그 8년의 결과물이다. <한겨레21>에 연재되었던 만화 중 시의성과 관계없는 작품들을 묶었다. 조남준씨는 <시사SF>의 시간을 “내 인생의 10분의 1”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게 홍보용 멘트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만 안다.
작품들은 주인의 모습을 쏙 빼닮았다. 그의 만화엔 잔재주가 없다. 그에겐 요리조리 치고 빠지면서 독자들을 시시덕거리게 만드는 말솜씨가 없다. 그는 우직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의 정면으로 파고들어가서 결정적 한방을 날린다. 따라서 그가 주로 사용하는 기법은 반전이다.
가위질을 즐겨하던 검열관이 불치병에 걸렸다. 그는 2043년에 깨어날 예정인 냉동캡슐에 들어간다. 검열관은 2043년에도 검열제도가 존속돼서 명랑사회가 유지되기를 기원한다. 2043년, 미래의 해동검열관들이 그에게 ‘해동불가’ 판정을 내린다(‘가위 만세1’). 등산을 좋아하는 중견 정치인. 정상에선 세상을 좀더 멀리 많이 볼 수 있으니, 정치란 이렇게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 목소리가 묻는다. “정상에서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나요?”(‘다큐멘터리 정상시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계획적으로 성폭행한다. 피해자의 부모는 가해자의 부모에게 책임지고 결혼하면 합의하겠다고 말한다. 합의는 이뤄지고 판사는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모두가 행복한 결론에 이르렀다. 마지막 장면은 ‘남편’ 될 사람의 방문에 문을 걸어잠근 피해 여성의 창백한 얼굴이다(‘착각’).
이 반전, 이 결정적인 한방을 좀 있어 보이게 분류하자면, ‘낯설게 하기’ 기법 정도가 되지 않을까. 지은이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논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그게 얼마나 지리멸렬한지를 폭로한다. 이렇게 날이 시퍼런 만화와 별도로 그의 서정적인 만화들도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작가가 웃음보다는 슬픔을 표현하는 데 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성탄절 라면만 보이는 구토물의 외로움이라든지 실직자 딸이 산타클로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은 잔잔한 여운이 오래간다. 자의건 타의건 매주 만화를 꼼꼼히 읽었던 독자로서, 실은 이런 ‘비시사적’ 만화들에 불평을 했더랬다. 더 나아가 혹시 쓸 거리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 불손한 의심까지 했다. 단행본으로 찬찬히 읽어보니 매우 섬세한 시인의 감성이 느껴진다. 만화건 인생이건 곱씹어보면 맛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