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김혜수를 먹어버렸다. 지난주 씨네리에서 독자선물로 준 김혜수 브로마이드의 얼굴 부분이 흔적도 없어졌다. 종이 뜯어먹기를 좋아해도 광택지까지 눈깜짝할 새 해치울 줄은 몰랐다. 엄마를 닮아서 특히 김혜수에 꽂히나보다(최근 그녀가 여러 영화에 원톱이 아니라도 출연하고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에도 나오는 걸 보면서 타협‘되기’보다는 타협‘하기’를 선택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점점 근사해진다). “이 먹보, 그만해, 너 얼굴 벌써 김혜수만해”라고 혼냈는데, 그날 밤 애가 열이 펄펄 끓었다. 안쓰러움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이 9개월에 벌써 그만하면 커서는 족히 세배는 되겠다는 비관이 애를 아프게 한 게 아닐까(괜찮아, 엄마도 잘 살잖아).
애를 낳아 키워서인지, 전에는 큰일 당한 이를 보면 그가 불쌍했는데 요즘에는 그의 부모가 있다면 어떨지 먼저 생각하게 된다. 고 윤장호 병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서 그의 어머니는 꺽꺽 흐느끼기만 하고 아버지는 “봐요, 내 아들 얼마나 잘생겼는지, 얼마나 잘생겼는데…”란 말만 반복하는 것을 봤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에 파병된 다산부대 소속 윤 병장은 통역병으로 2월27일 현지 기능공 교육자들을 안내하려고 출입증 발급을 돕던 중이었다. 자살폭탄자는 몸에 급조폭발물을 달고 부대 정문으로 걸어와 터뜨렸는데, 탈레반 대변인은 일부 통신사에 전화해 이날 바그람 기지를 방문 중이던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목표였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졌다. 윤 병장은 오는 4월에 돌아와 6월 전역할 예정이었다.
정부 홍보와는 달리 한국군 파병지 가운데 안전지대는 없다. 탈레반은 올 봄 미군 상대의 자살폭탄공격을 대대적으로 벌일 것이라 했단다. 윤 병장에 앞서 다산부대 파병생활을 했던 강성주씨는 <한겨레> 기고에서 “(평화와 재건이라는 명분과는 달리) ‘점령군’으로서 ‘피지배자’들을 협박하고 모욕하는 일에 끊임없이 동원돼야 했다”면서 “엉뚱하게 ‘남의 나라’ 침략전쟁에 동원되는 우리 젊은이들이 하루빨리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국익이고 동맹이고 나발이고 할 것 없다. 조건없이 돌아오라. 컴 온 베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