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을 만든 김병욱 감독은 요즈음 보기 힘든 대가족을 중심으로 시트콤을 만들어왔다. 시청률이 가파르게 상승해온 <거침없이 하이킥> 또한 조부모와 부모, 형제, 삼촌, 갓난조카에 이혼한 삼촌의 전처와 각종 친구들까지 가세하여 복잡다단한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어떻게 그 많은 인물들이 1회당 한번씩이라도 등장하여 대사를 하는지 신비로울 지경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미스터리가 있다. 개성댁과 유미 아버지가 얽힌 살인사건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과거와 관계에도 비밀이 있고 미스터리가 있어 <로스트> <위기의 주부들>마저 떠오른다. 누가 강자이고 약자인지 알 수가 없고, 살인사건은 해결되었나 싶더니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인 인물도 있다. 그런 질문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거침없이 하이킥>의 캐릭터를 탐구해보았다.
관록의 노부부, 승자는 누구인가
이순재와 나문희 그것이 알고 싶다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강점 무슨 일이든 참견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탓에 어쩌다가 문자메시지와 야동과 댓글까지 섭렵하게 되어버린 순재. 한때는 마음 따뜻한 미소년이었지만 지금은 가부장적인 폭군으로 군림(하려고 노력)하며 다년간 아내를 무시하는 비술을 쌓아왔다. 이도 저도 안 되면 결정적인 사실을 아내에게 알려주지 않아 무력화하는 필살기를 날리곤 한다. 순재 때문에 문희는 남들 등산복 입고 산에 올라갈 때 온천 가는 줄 알고 목욕 바구니를 들고 나온 적이 있다. ★약점 똑똑한 며느리를 들이는 바람에 병원 이름이 이순재 한방병원에서 이(순재)&박(해미) 한방병원으로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 예약환자가 하루에 세명도 안 되고, 걸핏하면 오진. 밖에서 새는 바가지가 안에서도 샌다면 백전백패다. 누군가 문희에게 관심을 보이면 갑자기 그녀를 미녀로 착각하기도 한다. ★필살기 발로 해도 그것보단 낫겠다!
★강점 생애 처음으로 체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닭꼬치 한 다발을 먹어치우고 꽉 찬 박스 몇 개쯤은 거뜬하게 들어올리는 체력, 순재가 아무리 호통을 쳐도 귓구멍 한번 후비면 잊어버리는 무신경, 손자 준이를 등에 업고 아들 밥을 해 먹이며 며느리 욕도 하는 사무처리 능력.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던데 무신경한 이에게 당할 자 없다. ★약점 문희는 며느리 해미를 진정한 적수로 여기고 있어 전력이 분산되곤 한다. 해미 대변으로 변기가 막혔을 때, 문희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해미를 망신주려고 했지만, 이때 등장하여 상황을 역전시킨 다크호스는 바로 순재였다. 밥을 굶기면 될까 싶겠지만 순재에겐 삼각김밥이 있다. 비록 포장지 까는 법을 몰라 밥 따로 김 따로 먹기는 해도. ★필살기 마실이나 여행을 빙자한 파업 혹은 태업.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준하와 박해미 그것이 알고 싶다 준하와 해미가 부부라는 게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매력포인트 남들이 보기엔 없다. 증권회사에서 잘린 다음에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지만 고객은 순재밖에 없는 듯하고, 식욕은 엄청나니 밥값 댈 일이 고단하다. 무엇이든 새어나가는 팔자여서 돈과 운이 새다 못해 심지어 가스도 새어나가 그렇게 자주 방귀를 뀌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암암리에 강쇠준하라는 말이 돌고 있으니 침대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상열지사를 치르는 것이 아무도 모를 그의 매력이라면 매력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해 닭뼈를 토해내는 괴물이 된 다음에도 해미가 나타나면 시키는 대로 한다. 미끼도 먹으러 뛰어간다. 이만큼 말 잘 듣는 남편이라면, 딱히 쓸 데가 없어도…. ★사랑하는 아내에게 먹을 거 어딨어? 먹을 거 줘!
★매력포인트 예쁘고 능력있고 노래와 춤에 능하며 폭탄주도 제대로 만든다. 그런 해미가 준하와 결혼한 이유는 애인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남자와 결혼해 스스로를 파멸에 몰아넣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복수라고 생각했던 해미. 그러나 뜻밖에 알콩달콩 살며 잘생긴 아들 형제까지 낳았다. 무엇보다도 시아버지 덕분에 개업한 거나 마찬가지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아는 척을 하고 간섭하여 가족들이 은근히 멀리한다. 특히 시동생 민용은 대놓고 멀리하고, “이 싹퉁바가지!”를 외치는 시어머니는 남몰래 이혼한 둘째며느리와 담합을 시도한다. 스트레스 받으면 원장실에서 홀로 춤을 추는데 그 모양이 매우 섬뜩하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오~케이! 거기까지!
삼각관계의 최고봉
이민용과 신지와 서민정 그것이 알고 싶다 그들은 둘이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인가, 셋이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사랑법 큰아들에 비하면 훤칠하고 잘생긴 민용은 대체로 형보다 속도 깊다. 학교에선 ‘미친개’로 통하지만 민정에겐 브래드 피트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정도로 통한다. 과연 그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선가 신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이민용인데, 데굴데굴 구르고 넘어지는 민정에게도 느닷없이 다정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무심한 남자 민용이 워낙 생각 많은 여자 민정을 만났으니 속타는 것은 민정뿐이다. ★작업멘트 밥이나 먹을래요? 영화나 한편 볼래요? 술이나 한잔 할래요? 등등.
★그녀의 사랑법 러시아 무용수에게 집세를 도둑맞고, 조폭을 재벌인 줄 알고 잘못 만나 두려움에 떨던 끝에, 느끼하지만 잘생긴 연하남 영민을 만났다. 하지만 헤어졌다. 민용에게 질렸다고는 하는데 어렵고 슬프고 힘든 일이 생기면 주로 떠올리는 사람도 민용이다. 휴대폰에는 아직도 ‘민용 오빠’라고 입력돼 있다. ★작업멘트 ‘민용 오빠’라는 글자가 떠오른 휴대폰 액정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집어들고 “…오빠”.
★그녀의 사랑법 신지의 애인 영민이 진단한 바에 따르면 민정은 뭐든 다 퍼주다가 차일 타입이다. 그러므로 때론 튕길 줄을 알아야 하지만, 한번 튕겼다가 밤새도록 끙끙 앓으니, 정신건강에 나쁘기로는 차이는 거나 진배없다. 그러나 집을 비롯한 중대한 생존 문제에서는 불쌍한듯 강인하고 끈질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현재 민용과의 관계는 나름 안정기. 그러나 운전하는 민용 옆자리에 앉은 신지를 보며 아직도 안절부절 못한다. 어쩌면 시청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윤호와 사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작업멘트 &%$#@(*@, 네? &*!~&%#, 네?)
삼각관계의 시대는 갔다, 신세기 사각관계
이민호와 이윤호와 강유미와 김범 그것이 알고싶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혹은 윤호와 유미 중 누가 더 바보인가.
★캐릭터 키가 작고 예쁘장하고 앳되 보여 방심하기 쉽지만 처세에 능하고 때로 사악하다. 공부하는 꼴을 못 봤는데 우등생인 걸 보면 타고난 머리가 좋은 것이다.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윤호를 부러워하지만, 형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유미와 사귀고야 말았다. ★어쩌면 남자는 사랑보다 의리를 중시한다 했던가. 그러나 민호는 절대 그런 남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빌미만 잡았다 하면 유미를 욕하는 범이와 계속 친하게 지내며, 가끔 셋이 만나기도 하는 건?
★캐릭터 키 크고 잘생긴 윤호는 가죽점퍼 입고 오토바이를 타면 빛이 난다. 그런데 내용물이 부실하다! 걸핏하면 민호에게 당하고 폼잡다 감기몸살을 앓기도 한다. 특기는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현관 놔두고 창문으로 나가기. 아무리 잔머리를 굴리려고 해도 굴러갈 머리가 없는 것이 매우 귀엽다. ★어쩌면 윤호 사전에 어쩌면, 이란 없다! 하지만 서민정 선생 전 남자친구에게서 도토리 값을 받아주고 민용에게 데려다주기도 하는 걸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캐릭터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꼭 말을 해서 티를 낸다. 미국의 수도는 LA고 민호네집 깨진 도자기는 고구려 청자고… 아버지가 살인자라고 의심하면서도 범죄를 숨기려고 몸을 던지는 걸 보면 효녀인 것같기도 하다. ★어쩌면 윤호와 바보 순위를 다투는데, 유미 사전이라고 ‘어쩌면’이 있겠는가!
★캐릭터 민호네 집에 매우 자주 오고 민호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말고는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다. 비 오고 천둥치는 밤 유미네 집으로 민호를 구하러간 장면은 심금을 울렸다는 평가.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이 민호다. ★어쩌면 유미를 매우 싫어하는데도 꼬박꼬박 함께 만난다. 이것은 범이도 모르는 범이의 마음일까?